"더는 안전함 느끼지 못해" vs "홍콩, 새로운 시대 진입"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새해 첫 업무일인 3일 홍콩에서는 극과 극의 풍경이 펼쳐졌다.
한쪽에서는 친중 진영이 장악한 입법회(의회)에서 의원들의 정부에 대한 충성선서식이 진행됐고, 다른 한쪽에서는 민주 진영을 대표하는 한 언론사가 "더는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해 폐간한다"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9년 홍콩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놀란 중국이 홍콩국가보안법을 제정한 지 1년반 만에 확연히 달라진 홍콩의 모습이다.
민주 진영을 대표하는 정치인과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150여명이 체포되고 많은 이들이 해외로 떠난 상황에서 '홍콩의 중국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 2016년 파행 충성선서식 이번엔 순조롭게 진행
홍콩 공영방송 RTHK에 따르면 이날 홍콩 입법회에서는 지난달 19일 선거에서 뽑힌 90명의 의원이 충성선서를 했다.
충성선서는 홍콩 미니헌법인 기본법 준수, 홍콩특별행정구에 대한 충성, 홍콩 정부에 책임을 다하고 임무에 헌신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내용상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충성선서 이후 당국이 선서의 진실성을 의심하면 즉시 자격이 박탈되고 향후 5년간 공직에 출마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형사고발까지 될 수 있다고 해석한다.
캐리 람(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이 주재한 충성선서식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대다수가 광둥어로 선서를 했고, 3명이 북경어, 1명이 영어로 선서했다.
90명 중 유일하게 자신을 '친중파'가 아니라고 홍보한 중도파 틱치연(狄志遠) 의원 등 2명이 선서 도중 각각 '홍콩'과 '의원'이라는 단어를 빼먹어 다시 선서한 것을 제외하고는 문제없이 선서식이 끝났다.
이는 직전인 2016년 입법회 충성선서식에서 민주 진영 의원들이 시위를 펼쳤던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렁궉훙 등 일부 민주 진영 의원이 당시 충성선서식 도중 '홍콩은 중국이 아니다'라는 글이 쓰인 현수막을 들어 보이거나 '홍콩 민족의 이익 수호' 등 표현을 선서 문구에 추가했다. 결국 민주 진영 의원 6명이 의원 자격을 박탈당했다.
홍콩 친중 진영 최대 정당이자 이번 선거에서 19석을 얻은 최고 승자인 민주건항협진연맹(민건련·DAB)의 스태리 리 주석은 이날 선서식 직후 취재진에 "우리가 정치적 분쟁을 제거하고 거버넌스 개선을 위해 손을 맞잡으면서 홍콩이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돼 흥분된다"면서 "홍콩을 정상궤도로 복귀시키고 입법회에 안정을 되찾아준 중국 정부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 시티즌뉴스 "법 위반 판단 못 해 폐간이 최선의 결정"
반면, 비슷한 시각 홍콩 민주 진영 온라인매체 시티즌뉴스(衆新聞)의 편집국장과 주필은 폐간 기자회견을 열었다.
데이지 리 편집국장은 "뉴스보도나 특정한 코멘트가 법을 위반하는지를 더는 판단할 수 없어 폐간이 최선의 결정"이라며 "변한 건 우리가 아니고 바깥 환경"이라고 말했다.
앞서 시티즌뉴스는 전날 밤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갑작스럽게 폐간을 발표했다. 이들은 이날 밤 12시 사이트 운영을 중단한다.
리 국장은 "지난주 입장신문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과 체포를 지켜보며 폐간을 결정했다"며 "언론계 불확실성 속에서 업무를 계속 수행하는 데 더는 안전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크리스 융 주필은 "결정은 단기간에 이뤄졌다. 입장신문의 운명이 폐간 결정을 촉발했다"며 "우리가 일부 위험에 노출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배제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라인이 어디에 있는지 불분명하다. 과거 기사나 글들이 지금 문제가 되는지도 알 수 없다"며 "비판적이거나 문제적이라고 보이는 이들은 훨씬 더 취약하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며 우리가 언론환경의 불확실성 속에서 폐간을 결정한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나 국가안전처에서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반적인 미디어가 점점 힘겨운 환경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당국이 일부 인사들의 발언을 통해 자신들을 손보겠다는 메시지를 흘려왔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빈과일보, 입장신문에 이어 6개월 사이 홍콩 민주 진영 매체 3곳이 당국의 압박 속에 자진 폐간하게 됐다.
앞서 새로 선출된 입법회 의원 90명 중 89명은 지난주 경찰의 입장신문 압수수색과 체포를 지지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융 주필은 다만 "젊은 기자들은 우리의 폐간을 보며 단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여전히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이 있다. 운신의 폭이 좁아졌지만 그렇다고 '제로'가 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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