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In] 미국 대신 호주 가려던 日 총리…미일동맹 이상기류인가

입력 2022-01-05 06:40  

[이슈 In] 미국 대신 호주 가려던 日 총리…미일동맹 이상기류인가
결국 미국·호주 방문 모두 무산…코로나가 직접 원인?
日 언론 "기시다 對中 저자세 외교에 미국 불신감 폭발"

(서울=연합뉴스) 정열 기자 = 오랜 기간 '린치핀'(linchpin·핵심축)으로 비유되던 미일 동맹에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베이징(北京) 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동참을 놓고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 데다 미군이 자위대에 제안한 극비 작전계획이 일본 언론을 통해 새 나간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보통 새로 취임한 일본 총리는 최대 동맹국인 미국을 가장 먼저 방문해온 관례를 깨고 호주를 먼저 찾으려다 무산된 것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 연초 미국·호주 방문 무산된 기시다…"미국이 불신 폭발"
기시다 총리는 4일 연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호주 방문을 목표로 조정을 계속 해왔지만 국내 코로나19 대책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방문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날 호주 일간 오스트레일리안파이낸셜리뷰(AFR)는 기시다 총리가 이번 주중 호주를 방문해 스콧 모리슨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호주 내 코로나19 확산세가 기시다의 호주 방문에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애초 양국 정상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방문부대 지위 협정'의 일종인 '원활화 협정'(RAA, Reciprocal Access Agreement)에 서명할 예정이었다.
RAA는 당사국 부대가 공동훈련과 재해구호 등을 위해 상대국에 일시 체재할 때 입국심사와 휴대품 관세를 면제하고 무기와 탄약 반입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이 골자다.

이 협정이 발효하면 양국 부대의 상호 방문이 쉬워지면서 공동으로 훈련할 수 있는 환경이 크게 개선된다.
일본과 호주는 2014년 7월 자위대와 호주군이 상대국에 체재할 때의 법적 지위를 규정하는 RAA 체결 협상을 시작했지만 진척을 보지 못하다가 최근 양국이 중국발 위협에 공동 대응할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협의가 탄력을 받게 됐다.
양국은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기시다 총리의 호주 방문이 무산되면 야마가미 신고(山上信吾) 호주 주재 일본 대사가 대신 협정에 서명하기로 했다고 AFR는 전했다.
기시다 총리의 호주 방문 계획이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지난해 10월 취임한 뒤 양자 정상회담을 위해 처음 찾는 해외 방문국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동안 새로 취임한 일본 총리는 거의 예외 없이 최대 동맹국인 미국을 먼저 찾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기 때문에 기시다의 호주 방문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심지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취임도 하기 전인 2016년 11월 미국 뉴욕으로 날아가 외국 정상 중 처음으로 당선인 신분이던 트럼프와 회동한 바 있다. 그만큼 대미 외교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1월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이 워싱턴DC에서 취임 후 첫 대면 정상회담을 한 외국 정상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였다.
기시다도 전임자들처럼 바이든 대통령과의 양자 회담을 위해 이달 초 미국을 방문하는 방안을 최우선으로 추진했으나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이달 4일부터 뉴욕에서 열리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재검토 회의에 직접 참석해 연설하려고 했다.
피폭지인 히로시마가 지역구인 기시다 총리는 NPT 회의에 참석해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제로 연설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개최지인 뉴욕에서 오미크론 변이가 급속히 확산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직접 참석을 보류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오미크론 변이 확산은 표면적인 이유이고 원래 기시다 총리가 NPT 참석을 계기로 워싱턴DC를 방문해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추진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방미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최근 베이징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을 둘러싸고 일본 정부가 보여준 모호한 태도가 기시다 정권에 대한 미국 정부의 불신을 가중했고 결국 미일 정상회담 불발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산케이 계열 석간 후지는 "바이든 대통령이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발표한 것은 지난달 6일이었다"며 "영국, 호주, 캐나다 등은 즉각 동참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기시다 총리의 동참 결정은 무려 18일이나 늦었다. 동맹국과 미국이 불신감을 폭발시킨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 "기시다의 對中 저자세 외교, 미일 동맹 약화시켜"
일본 정부가 미국이 주도한 베이징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에 대한 동참 의사를 발표한 것은 지난달 24일이었다.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의 기자회견을 통해서였다.
마쓰노 관방장관은 총리관저에서 연 당시 기자회견에서 정부 대표단의 베이징 올림픽 불참 결정을 발표하면서도 굳이 '외교적 보이콧'이란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베이징 올림픽에 정부 대표단을 보내지 않기로 한 미국 입장에 동조하면서도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해당 행위를 외교적 보이콧으로 규정하지 않겠다는 취지였다. 미국이 외교적 보이콧 방침을 발표한 지 한참 지난 시점일 뿐만 아니라 막판까지 중국의 입장을 배려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다.
올해가 일중 국교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여서 가급적 중국과도 우호적 관계를 만들고 싶다는 기시다 정권의 속내가 투영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석간 후지는 자민당 간부를 인용해 "미국은 기시다 총리의 이상한 대중 저자세 외교가 미일 동맹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대중 포위망을 무너뜨리고 중국의 대만 침공을 유발할지도 모른다고 경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와중에 일본 정부에 대한 미국의 불신을 가중하는 사건이 또 발생했다.
지난달 23일 교도통신이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단독 보도한 '대만 유사시 미일 공동작전계획' 초안이 그것이다.
교도통신이 파악한 이 초안은 대만 침공에 대한 긴박감이 높아지는 초기 단계에서 미 해병대가 자위대 지원을 받아 대만에 인접한 오키나와(沖繩)현과 가고시마(鹿兒島)현 사이의 섬 지역에 임시 공격용 군사 거점을 설치해 부대를 전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래 이 작전계획은 이달 초 미국에서 개최될 예정인 미일 외무·방위 담당 각료(2+2) 회의인 안전보장협의위원회에서 최종 합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교도통신 보도로 내용이 사전에 알려지자 대만 유사시 전장(戰場)이 될 것을 우려한 오키나와현의 시민단체와 학자들이 반대 운동을 시작하는 등 일이 꼬이고 있다.
다마키 데니(玉城デニ) 오키나와현 지사는 지난달 24일 오니키 마코토(鬼木誠) 방위성 부대신을 만나 "(오키나와가) 또다시 공격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는 뜻을 전달하기도 했다.
오키나와 지역 유력지 류큐신보는 '군의 폭주는 용납할 수 없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다른 나라의 전쟁에 개입하는 것은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며 "자국을 전장으로 만드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석간 후지는 "대만 유사시 미일 공동작전계획 초안은 인도·태평양 지역을 담당하는 미군이 자위대에 극비리에 제안한 것"이라며 "미국 측은 극비 작전을 왜 지금 누설했는지, 일부러 계획을 망치기 위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passi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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