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일본에서 아이를 익명으로 낳을 수 있는 산모의 권리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원하지 않는 임신 등을 한 여성이 병원 외에 행정기관을 포함한 누구에게도 신원을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아이를 낳는 것을 일본에선 '내밀(內密)출산'이라고 한다.
그러나 호적법상 출생 신고를 할 때 유기아(遺棄兒)의 경우 부모가 누군지 알면 이름을 기재하도록 돼 있어 이 방식의 출산은 사실상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만일 병원 측이 어머니의 신원 정보를 은폐한 채 출생신고서를 제출하면 호적법에 저촉될 수 있고, 이름을 알고도 적지 않으면 형법상의 공정증서 원본 부실기재죄로 처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구마모토(熊本)시에 소재한 시케이(慈?)병원이 4일 기자회견을 통해 작년 12월 10대 여성의 내밀출산 사례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2007년부터 키울 수 없는 신생아를 익명으로 맡아주는 '황새의 요람'(일명:아기 우체통)을 운영해온 이 병원은 신분 노출을 꺼리는 임신부가 홀로 출산하다가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로 2019년 법제화되지 않은 내밀 출산을 독자적으로 도입했다.
이 제도에 따라 이 병원을 이용하는 여성이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의사가 없는 경우 병원 측이 대리인 자격으로 산모 신원을 적지 않은 신고서를 행정기관에 제출하게 된다.
아이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병원 금고에 보관된 어머니의 건강보험증 사본 등을 통해 본인 출생과 관련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번에 시케이병원에서 내밀출산을 한 뒤 아기를 병원에 맡기고 퇴원한 여성은 모친과의 관계가 끊길 것을 우려해 익명을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적 업무를 담당하는 구마모토 시 당국은 이번 일과 관련해 "적법하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내밀출산을 피해 달라고 병원 측에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현행법상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야마가타 후미하루(山縣文治) 간사이(關西)대 교수(어린이가정복지학)는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내밀출산은 산모의 안전이 보증된다는 점에서 효과가 있다"고 법제화 필요성을 지적하면서 어린이 인권에도 관련된 문제인 만큼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인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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