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3연임 가도에 유용…권력 장악하면 쓸모없어져"
(서울=연합뉴스) 정열 기자 = 최근 중국 정부의 내부 통제 강화로 확산한 국수주의 정서에 편승해 지식인이나 기업을 공격하는 극좌 성향 활동가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주로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블로거나 사회 평론가 등으로 구성된 극좌파 논객들은 처음에는 주로 자유주의적 지식인을 표적으로 삼았으나 최근에는 기업, 연예인 등으로 공격 대상을 확대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3연임을 앞두고 사상 통제를 강화하는 중국 당국이 일종의 행동대 역할을 하는 이들을 뒤에서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21세기판 문화대혁명인가…지식인·기업 등 무차별 공격
극좌파 논객들의 영향력 확대는 시 주석의 3연임을 앞두고 중국 공산당이 사회 전반에 걸친 사상 통제를 강화하는 움직임과 맞닿아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극좌 성향 블로거와 평론가들이 중국 내 온건파 지식인과 기술기업뿐 아니라 서방의 상징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으면서 국수주의 물결에 편승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에서는 시 주석의 3연임이 결정되는 오는 10월 20차 당 대회를 앞두고 기술기업부터 연예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정풍운동이 전개되면서 국수주의 분위기가 팽배한 상황이다.
홍콩 중문대학의 언론·커뮤니케이션학부 조교수인 팡케청(方可成)은 SCMP에 "반대파들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그들은 온건파 자유주의자들을 새로운 공격 목표로 삼기 시작했다"며 "최근에는 온건파 자유주의자들도 자취를 감추자 그들은 중국 내 사기업과 같은 새로운 적을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 애국주의 네티즌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던 기업은 '싼즈쑹수'(三隻松鼠)라는 식품 회사다.
'세 마리의 다람쥐'라는 뜻의 이 회사는 견과류와 말린 과일 등을 판매하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식품 기업으로, 2019년에는 중국 스낵 업계 최초로 매출이 100억 위안(1조9천억 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싼즈쑹수가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게 된 계기는 컵라면 광고였다. 이 광고에는 눈이 가느다란 모델이 등장하는데, 이는 즉시 '찢어진 눈' '동양인 비하' 논란으로 이어졌다.
소셜미디어에서 "서구의 고정관념을 이용해 중국 여성의 이미지를 비하하고 있다"는 비판이 쇄도했다.
해당 광고의 모델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눈이 작으면 중국인이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이냐. 모델로서 일했을 뿐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글을 올렸지만,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자 싼즈쑹수는 결국 사과하고 관련 광고도 삭제했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번 미운털이 박히자 중국 네티즌들은 싼즈쑹수가 3년 전에 올린 광고를 소환해 다시 심판대에 올렸다.
목에 빨간 스카프를 두른 모델들이 견과류 상자를 들고 있는 광고였다. 네티즌들은 "빨간 스카프는 중국 소년선봉대의 상징"이라며 광고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비난을 쏟아냈다.
관영 매체까지 가세해 "빨간 스카프는 붉은 깃발의 한 귀퉁이를 나타내는 중국 혁명 전통의 상징"이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싼즈쑹수는 또 사과해야 했고 "내부 감사와 직원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머리를 숙였다.
◇ "시진핑 3연임에 유용…권력 굳히면 용도 폐기될 것"
대중에게 영향력이 큰 극좌 블로거와 인터넷 논객들이 온건파 지식인과 자국 사기업, 서방 기업 등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현상은 21세기판 문화대혁명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8월 "한바탕 심각한 변혁이 진행 중"이라며 '문혁 2.0'을 주장한 글로 명성을 얻은 국수주의 논객 리광만(李光滿)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당시 인민일보와 신화사, 중앙텔레비전(CCTV) 등 관영 매체가 그의 글을 일제히 옮겨 실으며 사실상 정부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해석됐다. 과거 문혁 4인방이자 문혁소조의 실세였던 야오원위안(姚文元)에 필적한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그는 중국 당국의 표적이 된 헝다, 앤트, 디디 등을 거론하며 "기업은 영원히 기업이다. 주주의 이익을 대표할 뿐이다. 정부는 영원히 정부다. 국가와 인민의 이익을 대표한다. 기업이 아무리 거대해도 경제에서 하나의 세포에 불과하다. 기업이 정책의 혜택을 받았다면 정부의 관리 감독 역시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SCMP는 수백만 명의 추종자를 거느린 리광만이나 시마 난 같은 인기 극좌 논객들의 발언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광범위하게 공유될 뿐 아니라 선전 담당 관리들이 이를 암묵적으로 조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중국에서 진행 중인 정풍운동의 목표는 분명하다며 알리바바 같은 거대 빅테크 기업이나 억만장자들이 그들의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달 개막하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더욱 고조되고 있는 중국 내 국수주의 물결은 월마트와 나이키, 아디다스 같은 서방 기업들도 공격 대상으로 만들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신장산 면화를 사용하지 않기로 한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중국 네티즌들의 불매운동의 표적이 된 사이 중국 토종 스포츠 브랜드인 안타스포츠가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고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안타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공식 유니폼 후원사다. 미국 등 서방에서 인권 문제를 제기한 신장 지역에서 생산하는 면화로 제품을 만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중국 내에서의 대접은 사뭇 다르다. 중국 대중의 불매운동으로 아디다스와 푸마의 지난해 3분기 매출이 약 15% 감소한 것과 달리 안타는 작년 상반기 매출이 56% 급증하며 시장점유율을 확대했다.
안타는 최근 재무보고서에서 '궈차오'(國潮)로 통하는 애국 마케팅이 중국산 브랜드의 인기를 견인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처럼 중국을 휩쓰는 애국주의 물결은 공동부유와 자급자족 등을 새로운 기치로 내건 시 주석의 장기집권 기반을 공고히 하고 내부 통제를 강화하는 효과가 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갈수록 기업하기 힘든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많은 외국계 기업들이 중국을 떠나고 있고,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고립도 심화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국수주의 정풍운동을 앞장서 이끄는 좌파 블로거들이 시 주석의 장기집권을 위해 이용되는 꼭두각시일 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정치 전문가인 로런스 리어든 미국 뉴햄프셔대 부교수는 SCMP에 "극좌 논객들은 단지 기회주의자들일 뿐이며 시 주석이 성공적인 20차 당대회를 통해 권력을 공고히 할 때까지만 유용할 것"이라며 "시 주석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면 용도 폐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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