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나라 정정불안에 공수부대 파병해 영향력 확대
소련 향수병?…"동유럽 '아랍의 봄' 우려해 독재 지원" 해석도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중앙아시아 최대 산유국인 카자흐스탄 전국 곳곳에서 새해 벽두부터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자 러시아는 지난 6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에 긴급히 공수부대를 투입했다. 국내 소요 사태에 해외 군대가 투입된 형국이다.
옛 소비에트연방(소련) 권역에 대한 러시아의 광폭 행보를 두고 서구에서는 예전 세력을 회복하려는 러시아의 욕구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일간지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이날 '푸틴, 유럽에서 소련의 야망 회복'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옛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은 최근 몇 년 동안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등 구소련 국가들의 내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014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고,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친러 성향 반군을 암암리에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규모 병력을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에 배치함에 따라 서방 정보당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임박했다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러시아는 2020년 구소련 국가들인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전쟁을 벌이자 분쟁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약 2천명의 평화유지군을 배치했다.
같은 해 벨라루스에서 장기 집권자인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의 6연임 부정선거 논란 때문에 시위가 수개월간 이어지자 공수부대를 배치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벨라루스에 대규모 군사·경제 지원을 약속하고, 연합훈련을 명목으로 병력을 배치하는 등 전폭적 지원을 통해 루카셴코 정권을 떠받치고 있다.
이번 카자흐스탄 지원도 러시아의 실질적 국익 보호를 추진한다는 차원에서 2020년 벨라루스 상황과 기본적으로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타임스는 카자흐스탄의 시위가 연료가격 급등과 함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 세력의 장기집권에 대한 불만이 함께 터져나온 결과라며 푸틴 대통령이 이를 보고 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지난 1991년부터 2019년까지 근 30년 동안 장기집권한 뒤 물러났으나 그 뒤로도 국가안보회의 의장직을 유지하고, '국부'(國父) 지위를 누리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 대통령인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장기 집권을 이어가며 사실상 독재 체제를 구축 중인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는 벨라루스나 카자흐스탄의 장기 독재 체제가 무너질 경우 2010년 중동 국가에서 확산했던 '아랍의 봄' 사태처럼 반정부 시위가 번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여기에 러시아는 카자흐스탄의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를 제집처럼 이용하고 있고, 카자흐스탄 북부에는 상당한 러시아계 인구가 살고 있다.
카자흐스탄이 원유나 천연가스, 우라늄 등 대규모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러시아가 지금 같은 체제에서 카자흐스탄이 안정되길 바라는 이유라고 더타임스는 설명했다.
반면 미국 입장에서는 러시아의 영향력이 닿고 있는 구소련 국가들이 민주화되길 원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러시아의 평화유지군을 파병에 대해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며 "미국과 세계는 인권침해와 헌법기관 장악의 근거로 작용할 수 있는 어떤 행동도 주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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