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아파르트헤이트 투쟁당에서 부패·무능 오명…지난해 지방선거 최악 참패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랜 정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8일(현지시간)로 창당 110주년을 맞는다.
ANC 당 대표를 겸하고 있는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7일 창당 기념행사가 열리는 림포포주 주도 폴로콰네를 찾아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와 투쟁에서 악명높은 로벤섬에 수감돼서도 규율 있는 '전사'로서 젊은 층에 영감을 준 피터 모카바(2002년 사망)를 기리는 연설을 했다.
1912년 지식인을 중심으로 아프리카인의 정치적 격동을 목적으로 결성된 ANC는 평등과 비인종주의를 내세우며 대륙 내 다른 아프리카인들의 식민지 독립을 고무했다.
1994년 마침내 남아공에서도 첫 민주선거가 이뤄져 ANC가 압승하고 그 얼굴 격인 넬슨 만델라(2013년 타계)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됐다.
이후 ANC는 올해 28년째 내리 집권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ANC는 부패와 무능, 환멸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주간지 메일앤가디언은 최신호에서 ANC의 110년 역사를 다루는 커버스토리의 제목을 '진지함에서 탐욕으로'라고 꼬집었다.
ANC는 전기와 물 등 가장 기본적인 서비스도 제대로 국민들에게 제공하지 못하면서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득표율 과반도 미달해 집권 후 최악의 참패를 기록했다.
수도 프리토리아, 최대 경제중심 요하네스버그, 입법수도 케이프타운 등에서 민주동맹(DA) 등 야당이 지방정부를 구성했다.
ANC가 주도한 일당 독주 체제에서 사실상 다당제에 기반한 연정체제로 접어들었다.
지난 1일 장례식을 치른 남아공의 '도덕적 나침반'이던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도 생전에 ANC가 당초 다양한 국민통합에 기초한 '무지개 국가'의 이상을 저버렸다면서 다수 흑인의 지지를 받던 ANC가 도리어 국민의 심판을 받아 퇴출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장례식 이튿날 남아공 민주주의의 전당인 케이프타운의 국회 건물이 방화범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화재로 대부분 불탔다. 7일 공개된 소방관리들의 육안 점검 보고서에선 화재 동안 작동하지 않은 스프링클러는 지난 5년간 점검을 받지 않았고, 방화문은 걸쇠 잠금장치가 돼 있어 오히려 불과 연기 확산을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가 하면 그로부터 사흘 뒤인 지난 5일에는 최고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가 살인죄로 복역 중이다 가석방 상태인 30대 남성의 해머 공격을 받아 유리창 등이 박살 났다. 남아공 법무장관은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고 개탄했다.
마침 이번 주는 레이먼드 존도 헌재소장 대행이 제이콥 주마 대통령 재임(2009∼2018) 시절 인도계 재벌 굽타가문이 정부 부처와 국유기업들을 농단한 전모의 일부를 밝힌 보고서를 사법조사위원회 활동 4년만에 처음으로 발간해 라마포사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한 때였다.
주마 전 대통령은 사법조사위 출석을 거부하다 법정모독 혐의로 지난해 7월 15개월형을 받고 수감됐다. 그러자 그의 지지층을 중심으로 8일간에 걸친 폭동과 약탈, 방화가 일어나 300명 넘게 숨지고 수천 곳의 대형마트, 사업장 등이 파괴됐다.
그러잖아도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전부터 침체이던 남아공 경제는 록다운(봉쇄령)으로 인한 타격에다가 폭동까지 겹쳐 실업률은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인 34.9%까지 치솟았다.
ANC는 올해 12월 당 대표 등을 선출하는 전당대회라는 중대 일정을 앞두고 있다. 당 대표는 2024년 총선에서 ANC가 다수당이 되면 대통령이 된다.
2018년 부패 일소를 공약으로 선출된 라마포사 대통령은 재선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당내에서 현재 의료적 가석방 상태인 주마 전 대통령의 지지세력이 그와 대립하고 있다.
ANC 당료들 가운데는 이번 사법조사위 '존도 보고서'에서 기소해야 할 대상자로 거명돼 일부가 보고서 출간을 막으려다가 라마포사 대통령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일각에선 ANC가 환골탈태하지 않을 경우 집권 30년 만의 가장 큰 시험대인 총선에서도 전국적으로 과반 득표를 못 하고 10년 내 정권 자체를 잃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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