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장기집권' 나자르바예프 사임 후 더 큰 혼란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냉전 종식 후, 전세계 독재 정권의 약 70%는 독재자가 물러난 후 무너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3년 전까지 30년 간의 독재 정권 치하에 놓였던 카자흐스탄에서 발생한 최근 소요 사태는 전세계 독재자들에게 '퇴임은 위험하다'는 엄중한 경고로 해석될 수 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7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사례를 빌어 이 같은 '독재자의 딜레마'를 조명했다.
독재자가 물러난 후 스페인처럼 민주화의 길을 걷는 나라도 있지만 수단, 짐바브웨처럼 쿠데타나 내전 등 또다른 폭력을 겪는 사례가 많다.
2019년 후계자인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현 대통령에게 권력을 넘겨줬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역시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14년 인터뷰에서 새 지도자의 요건으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시스템의 운영'을 꼽았고, 가능한 모델로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 사례를 검토하기도 했다.
NYT는 "그의 사퇴가 시위를 불러온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그러나 정정 불안, 정부의 안정 유지 실패, 강경 진압 등은 독재자 사퇴 후 분열되고 혼란에 빠진 관료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독재자가 안정을 가져온다는 얘기는 아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이들의 통치 스타일은 거버넌스의 기초를 훼손하고, 통치 능력은 거의 없는데도 내분에 대비한 정치 시스템을 남기고 본인은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만든다고 지적한다.
1인 독재체제에서는 내부 파벌, 엘리트 지배층, 군부 사이에 균형을 맞춰야 한다. 충분한 권력과 전리품을 주되 독재자를 넘볼만한 권력을 제공해서도 안 된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역시 집권 기간 정부를 흔들고 불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 인사들을 승진 또는 강등시키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떠오르는 스타를 억누르고 정부 기관을 독재자의 '충성파'들로 채우는 것은 정부가 좀처럼 자립할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이는 독재자의 딜레마로 연결된다. 경쟁자를 만들지 않고 후계자를 세우는 것과, 자신을 취약하거나 쓸데없는 존재로 만들지 않으면서 정부가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 사이의 갈등이다.
아제르바이잔과 시리아 등의 독재자들은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방식을 택했고, 북한에서도 3대에 걸친 세습 독재가 진행 중이다.
독재자의 방식이 통할 때 지도자는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중심이 되지만, 지도자가 힘이 빠지면 모든 게 무너진다.
컬럼비아대 앤드루 네이선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권력 이양의 순간은 거의 항상 위기의 순간이었다"며 "숙청이나 체포, 파벌주의, 폭력 등을 포함했다"고 밝혔다.
카자흐스탄은 특히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통치기간이 전세계 독재자의 평균 재임 기간인 약 10년의 2∼3배에 달한다. 통치 기간이 길어지면, 독재자가 불가피하게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을 때 본인과 국가의 몰락 기간도 길어진다고 NYT는 설명했다. 해가 갈수록 독재자들은 권력을 내주기 어려워지는 반면, 위기로 인해 쫓겨날 경우 재앙의 위험도 커진다.
NYT는 이러한 문제가 비단 독재자들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런 지도자가 전세계에 더 많아지고 있으며, 이는 독재 정권을 공고히 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것과도 맞닿아 있다고 NYT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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