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에 앞다퉈 뛰어들고 자율주행은 농기계·중장비로 확대
우주기술·블록체인·NFT 등으로 확장…한국 기업 역대 최대 규모로 참가
(라스베이거스=연합뉴스) 정성호 특파원 김보경 김영신 정윤주기자 = 7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일원에서 막 내린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박람회 CES 2022는 3년차로 접어든 팬데믹 속에서도 식지 않는 글로벌 산업계의 혁신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 무대였다.
그러나 행사를 코앞에 두고 지구촌을 덮친 오미크론 변이는 CES에도 타격을 입혔다. 지난해 전면 온라인으로 개최한 뒤 올해는 다시 대면 행사로 복귀하려 했지만 오미크론 확산에 참가 기업이 대거 중도 하차했다.
여기에 CES 주최 측인 미 소비자기술협회(CTA)도 방역 차원에서 일정을 사흘로 하루 단축했다. 그러면서 올해 참가 기업 수는 2020년의 절반에 못 미치는 2천100여곳으로 줄었고 입장객도 감소하면서 주목할 만한 신기술이나 활기가 예년만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런데도 올해 CES에선 경계 파괴와 이종 산업·기술 간 융합·확장, 전기차 전환 등 최근 몇 년 새 진전된 트렌드가 더 심화하고 가속하는 흐름이 또렷했다.
현대자동차는 정의선 회장이 로보틱스(로봇 기술)와 3차원 가상세계를 일컫는 메타버스를 결합한 '메타 모빌리티'를 미래 모빌리티(이동성) 비전으로 제시해 주목받았다.
이는 자동차나 경량 항공기인 어번 에어 모빌리티(UAM) 같은 이동 수단을 메타버스에 접속하는 인터페이스로 삼으면서 로봇을 '대리인'으로 이용해 메타버스에서 할 수 있는 체험의 지평을 확장한다는 것이다.
한때 '전자 왕국'으로 불렸던 일본 소니는 전기자동차 사업 진출 의향을 공식화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 올봄 전기차 회사 '소니 모빌리티'를 세우고 전기차의 상업적 출시 가능성을 타진해보겠다고 선언했다.
자동차 업계는 높은 진입 장벽으로 오랫동안 신예의 등장을 억눌러왔지만 상대적으로 기술 장벽이 낮다고 평가되는 전기차로 전환하면서 테슬라, 리비안 같은 신생 업체가 전통의 완성차 업체를 위협하고 있다.
소니 역시 이런 추세에 올라타 이미지 센서,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강점을 발판으로 성장하는 전기차 시장에서 지분을 확보하겠다는 의욕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시장에선 부문별 1위 업체가 경쟁사의 사업 영토를 정면으로 겨냥한 제품을 내놓으면서 한층 치열해질 경쟁을 예고했다.
PC용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의 지배자로 군림해온 인텔, 그래픽처리장치(GPU) 분야의 1인자 엔비디아, 모바일 통신칩 시장 1위 업체 퀄컴 등은 외장형 GPU, 그래픽 통합형 CPU, 차량·PC용 반도체를 새롭게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도 조만간 대형 인수·합병(M&A)이 있다고 공개했다. 시장에선 삼성이 지목한 신(新)성장동력이 무엇일지를 놓고 관측이 한창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차량용 반도체, 로봇, 전장(자동차 전자장비) 등 삼성의 기존 사업과 시너지가 큰 분야가 후보로 거론된다.
미국 최대 완성차 업체 제너럴모터스(GM)는 간판 상품인 픽업트럭 '실버라도'의 전기차 버전을 내년 출시하겠다고 밝히는 등 전기차 라인업을 더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1회 충전으로 무려 1천㎞를 달리는 전기 콘셉트카 '비전 EQXX'를 공개했다. 또 전자업체인 LG전자는 인공지능(AI) 기반의 미래 자율주행차 콘셉트 모델 'LG 옴니팟'을 선보였다.
'인터넷의 미래'로 일컬어지는 메타버스 시장을 선점하려는 경쟁도 치열했다. 메타버스는 업무·여행·관광·쇼핑·놀이 등 인간의 모든 활동이 가능한 가상세계로,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메타버스가 구현되려면 10년은 걸릴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메타버스 기업으로 전환을 선포한 메타 플랫폼(옛 페이스북)이 빠지면서 올해 CES에서 눈에 띄는 이 분야 신기술은 없었지만 메타버스를 통해 인간 경험의 지평을 넓히려는 기업이 전 세계에서 몰려왔다.
롯데정보통신은 자회사 칼리버스와 함께 걸그룹의 콘서트 현장에 있는 듯한 경험을 관람객에게 제시했고, 일본 카메라 기업 캐논은 '코코모'로 명명된, 가상현실(VR) 기반의 몰입형 영상통화 서비스를 선보였다.
체코의 VR지니어스는 전투기 조종 시뮬레이션 기술을, 국내의 비햅틱스는 VR 세계에 촉각까지 접목한 촉감형 메타버스 기술을 각각 관람객들에게 선보여 많은 관심을 끌었다.
미국의 중장비·농기계 업체 존디어는 AI를 농기계에 접목해 잡초를 식별한 뒤 여기에만 제초제를 뿌리는 기술로 CES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존디어는 또 사람 없이도 혼자서 농사를 짓는 완전 자율운행 트랙터도 공개했다.
AI 기반의 자율운행 기술이 자동차를 넘어 다른 장비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올해 CES에선 또 사상 처음으로 의료 분야 기업인 애벗 래버러토리의 최고경영자(CEO) 로버트 포드가 기조연설을 했다. 포드 CEO는 기조연설에서 인간이 개발한 기술을 통해 건강을 지키는 '휴먼 파워드 헬스'(Human Powered Health)를 회사 비전으로 제시하면서 이를 통해 "인생을 최대한으로 살라"고 강조했다.
의료 기업의 기조연설 참가는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관심과 중요성이 새삼 부각된 의료·바이오도 전자·가전 등 CES의 전통적인 주 종목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는 의미로 산업계는 풀이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와 제프 베이조스 등 억만장자들이 우주탐사·관광 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올해 CES엔 또 시에라 스페이스, 제로 G 등 우주기술 업체도 여럿 참가하며 앞으로 팽창할 시장을 예고했다.
블록체인 관련 업체가 참가하고, 새로운 가상자산인 대체불가토큰(NFT)을 주제로 한 콘퍼런스가 열리는 등 첨단 신기술로 행사의 외연이 확장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올해 CES는 500여개 한국 기업이 부스를 꾸리면서 역대 가장 많은 국내 업체가 참가한 행사로 기록됐다.
삼성·LG 등 터줏대감 외에 SK 그룹도 6개 계열사가 합동으로 부스를 꾸려 친환경 미래의 비전을 선보였고, 현대중공업그룹은 올해 처음으로 CES에 출전해 '십(ship) 빌더'(조선사)에서 '퓨처(future) 빌더'(미래의 개척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행사장 중 하나인 버네시안 엑스포에는 또 290여개 한국 스타트업이 전시관을 차리고 신기술을 과시했다.
증강현실(AR) 기술로 전기·가스·통신 배관 등 지하 시설물의 위치와 형태를 파악하는 '메타뷰' 서비스로 참가한 익스트리플의 노진송 대표는 "올해 관람객의 반응이 좋아서 내년에 부스 규모를 3배 정도로 더 키워 참가할까 한다"고 말했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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