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년 대비 약 7배로 급성장…작년에 추진 단지·가구도 급증
용적률 제한·내력벽 철거 허용 여부 등 법·제도 손질 필요
(서울=연합뉴스) 홍국기 기자 = 지난해 1기 신도시(경기 일산·분당·중동·평촌·산본)를 중심으로 아파트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가 급증하면서 관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 대부분은 용적률이 높아 재건축이 어려운 상황인데다 조성된 지 30년이 넘은 노후 아파트들인 만큼 법·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1기 신도시 중심으로 리모델링 추진 '붐'
11일 한국리모델링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에서 리모델링 조합의 설립을 완료한 아파트 단지는 94곳(6만9천85가구)으로 집계됐다.
2020년 58곳(4만3천155가구)과 비교하면 추진 단지와 가구 수가 60% 이상 늘었다. 2019년 37곳(2만3천935가구)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아직 조합설립 인가를 받지 못한 단지까지 포함하면 리모델링 추진 규모는 더 커진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작년 9월 말 기준 수도권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는 총 98곳으로, 이 가운데 경기도가 42곳을 차지했다. 1기 신도시가 집중된 경기에서 리모델링 사업이 가장 활발한 것이다.
성남 분당에서는 한솔마을 5단지가 지난해 3월 1기 신도시 중 최초로 사업계획을 승인받았다.
같은 해 4월 분당 무지개마을 4단지가 사업계획승인을 받은 데 이어 올해 매화마을 1단지와 느티마을 3·4단지 등이 사업계획승인을 앞두고 있다.
그간 성남 분당을 중심으로 활발했던 리모델링 사업은 최근 1기 신도시 전체로 번지는 양상이다.
군포 산본에서는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18개 단지가 오는 13일 '산본 공동주택 리모델링연합회' 발대식을 열고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이보다 앞선 지난해 5월 21개 단지가 리모델링 연합회를 구성한 안양 평촌에서는 같은 해 목련 2·3단지가 리모델링 건축 심의를 통과했다.
고양 일산과 부천 중동은 정비사업연합회가 꾸려지지는 않았지만, 개별 단지를 중심으로 리모델링 사업이 활발하다.
고양 일산에서는 주엽동 문촌마을16단지(뉴삼익아파트)가 이달 조합설립총회를 앞두고 있어 조만간 일산 최초의 리모델링 조합이 탄생할 전망이다.
중동신도시에서도 상동 한아름현대1차 아파트의 리모델링 조합 설립이 임박했으며 반달마을, 한라마을, 금강마을, 미리내마을 등에서도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동훈 리모델링협회 정책법규위원장(무한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은 "작년에 1기 신도시를 중심으로 리모델링 시장이 큰 폭으로 커졌다"며 "1기 신도시는 1989∼1992년 입주한 노후 아파트로 용적률이 대부분 200% 후반대라 재건축을 추진하더라도 사업성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주택 리모델링 시장 1조3천억→9조원…"올해 더 커진다"
수도권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가 늘어나면서 지난해 주택 리모델링 시장 규모가 급격히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A건설사의 공동주택 리모델링 시장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업계 리모델링주택사업 시장 규모는 8조9천172억원으로, 2020년(1조3천436억원)의 6.6배에 달하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A건설사 관계자는 "민간 재건축 사업에 대한 정부의 강경한 규제 기조가 계속 이어지면서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은 리모델링 사업에 뛰어드는 단지와 시공사가 증가한 것"이라며 "올해 시장 규모는 작년보다 더 커진 10조5천억원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또 B건설사에 따르면 주택 리모델링 발주 규모는 2020년 1조3천307억원에서 지난해 9조1천187억원으로 급증했다.
B건설사 관계자는 "올해 주택 리모델링 발주 물량은 19조원으로 지난해의 2배 이상으로 증가할 전망"이라며 "1기 신도시에서는 약 3조4천억원의 신규 물량 발주가 예상된다"고 전했다.
건설사마다 조사한 수치는 약간씩 상이하지만, 대략적인 시장 분석·진단·전망은 유사한 셈이다.
리모델링은 기존 아파트를 완전히 허물고 새로 짓는 재건축과 달리 구조체(골조)를 유지하면서 평면을 앞뒤로 늘려 면적을 키우거나 층수를 올려 주택 수를 늘리는 방식이다.
주거 불편의 핵심 원인인 설비와 마감재를 개보수하고, 지하 주차장을 새로 만들거나 더 넓힐 수도 있다.
아파트 재건축은 2018년 3월 안전진단 강화로 기준 연한인 준공 30년을 넘어도 통과 등급인 D(조건부 허용)나 E(불량)를 받기 어려워졌다.
반면 리모델링은 준공 15년 이상이면 추진할 수 있다. 구조체 안전진단에서 유지·보수 등급(A∼C) 중 B 이상이면 층수를 높이는 수직 증축이, C 이상이면 수평 증축이 가능해진다.
리모델링 공사의 경우 임대주택 공급 의무가 없고,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받긴 하지만 초과이익환수제 대상은 아니다.
이런 장점이 부각되며 시장 규모가 크게 성장하다 보니 대형 건설사들은 너도나도 리모델링 전담 부서를 만들어 수주전에 나섰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과거 주택 리모델링 시장은 규모가 작고 재건축·재개발에 비해 수익이 적으며, 기존 골조를 유지해야 하는 물리적·제도적 한계 탓에 대형 건설사로부터 외면받았지만, 최근 몇 년 새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올해 시장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수주전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리모델링 관련 법령·제도 정비 필요성 커져
업계에서는 리모델링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는 만큼 사업 활성화를 위해 관련 법령과 제도가 시급히 정비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노후된 1기 신도시 아파트의 주거 환경을 정비하기 위한 해법으로 리모델링이 핵심 대안으로 거론되는 가운데 용적률 제한에 대한 제도부터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준 J&K도시정비 대표는 "수도권 대부분의 신도시나 부산 해운대지구 등은 20∼30년 전 도시계획 기준으로 지정해놓은 지구단위계획에 의해 용적률이 제한돼있다"며 "문제는 리모델링의 용적률 완화 적용 기준이 자치구별로 제각각이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 대표는 이어 "서울과 부천은 지구단위구역과 관계없이 주택법 범위의 용적률이 보장되지만, 그 외 상당수 지역은 지구단위계획이 지정한 용적률을 고수하고 있다"면서 "리모델링이 제대로 진행되려면 지구단위구역 내 리모델링 용적률 완화 기준을 자치구에 맡길 것이 아니라 법으로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모델링 사업의 수익성 측면에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수직증축과 가구 간 내력벽 철거 허용 여부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강한 것도 사업 추진 난항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2014년 4월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허용했다.
최대 3개 층(15층 이하는 2개 층)을 더 올릴 수 있는 수직증축은 가구 수를 늘리기 쉽고, 늘어난 가구 수(종전 가구수 대비 15%)의 일반분양을 통해 사업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한동안 재건축 대안 사업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현재까지 수직증축 리모델링 허가를 받은 곳은 서울 송파구 송파동 성지아파트가 유일하다.
아울러 국토교통부는 리모델링 수직 증축의 사업성을 높여줄 가구 간 내력벽(건물의 하중을 견디거나 분산하도록 만든 벽) 철거 허용 여부에 대한 연구용역 발표를 계속 미루고 있다.
내력벽 철거는 재건축보다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아파트 리모델링에서 다양한 평면 도입을 통해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는 핵심 요소다.
정부는 2015년 말 수직증축 리모델링 시 아파트 가구 간 내력벽을 일부 철거하는 것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안정성 문제가 제기되자 이듬해인 2016년 8월 재검토하기로 했다.
이후 2019년 3월까지 허용 여부를 결정한다고 밝혔으나 발표는 여태껏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이동훈 리모델링협회 정책법규위원장은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는 단지가 빠른 결실을 보도록 시급히 제도와 법령 정비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신동우 아주대 건축학과 명예교수는 "1기 신도시 아파트의 주거 환경 정비에 리모델링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국회에서 발의된 리모델링 특별법을 하루빨리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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