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수출국 탈피 전략…2014년에도 광물 원광 수출 금지
일부 국가들도 수입선 다변화·현지 투자 확대 등 대응책 부심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인도네시아 정부가 니켈에 이어 보크사이트, 구리 등 다른 광물 원광 수출도 단계적으로 중단하겠다고 예고하면서 글로벌 시장이 적잖은 파장이 점쳐지고 있다.
'자원 민족주의'라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지만 인도네시아 정부는 광물 원광 수출 중단이 10여년 전부터 계획된 정책이라며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리스크'에도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모습이다.
광물자원 부국 인도네시아가 '내수 챙기기' 행보에 일부 국가들은 수입선 다변화와 현지 투자 확대 등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 인도네시아 석탄 수출 금지조치에 일부 수입국 '긴장'
연초부터 인도네시아가 석탄 1월 수출을 중단한 뒤 중국 내 석탄값이 8%로 치솟았은 가운데 한국과 일본, 필리핀 정부가 잇따라 인도네시아 정부에 '수출 금지 해제'를 촉구하는 등 큰 파장을 불러왔다.
인도네시아의 석탄업자들도 계약 미이행에 따른 부대 비용 증가와 지체배상금 등을 들어 '배려'를 읍소했지만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국익이 우선"이라며 다른 광물 원광도 잇달아 수출 중단을 예고했다.
1만7천개의 섬으로 이뤄진 인도네시아는 광물 매장량이 많을 뿐만 아니라 미국, 캐나다, 호주 등과 비교해 인건비가 저렴해 광물산업 발전이 용이한 구조다. 코트라 자카르타 무역관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인도네시아의 니켈 생산량은 세계 1위, 보크사이트는 5위, 금은 7위를 기록했다.
주석과 구리도 10위권을 넘기긴 했으나, 주요 생산국으로 꼽힌다.
매장 자원이 이처럼 풍부한 인도네시아는 원자재 수출만으로는 채산성이 낮다며 오래전부터 완제품·반제품 수출국 전환을 꿈꿨다.
광물에 앞서 인도네시아는 1985년 가공 목재만 수출하도록 하고, 원목 수출을 금지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한시적으로 원목 수출 제한조치를 완화했다가 2001년부터 전면 적용하고 있다.
원목 수출 중단 후 글로벌 목재 업체들이 인도네시아에 직접 투자하고, 수출증가와 높은 채산성을 직접 체험한 인도네시아는 광물에도 같은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입장을 천명했다.
◇ 광물 원광 수출금지법령도 이미 등장…예고된 파장
인도네시아의 광물수출 금지는 일찌감치 예고된 조치였다.
인도네시아 의회는 지난 2009년 1월 신광업법을 제정하면서 현지 광산업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광산개발 인허가 절차를 체계화하고, 석탄과 광물 종류별로 '내수시장 공급의무'(DMO)를 부과했다.
특히, 2014년 1월에는 광물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원광 수출을 금지하는 관계법령 개정작업도 단행했다.
당시 광산업자들은 제련소 건설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며 광물 원광 수출이 불가능하면 대량 해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미국 광산업체 '프리포트-맥모란'은 2013년 말 해당 규정으로 인해 인도네시아 구리광산의 생산량을 60% 감축하고, 직원 절반인 7천500명을 해고해야 한다며 정부를 압박했다. 실제로 여러 업체들의 감산이 잇따르기도 했다.
특히 보크사이트 생산량은 2013년 55억7천만t에서 2014년 5천만t으로, 니켈은 2013년 44만t에서 2014년 24만t으로 각각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이로 인해 한때 국제 광물 가격이 치솟았지만 이후 광물 생산량 급감과 글로벌 가격 하락, 대량 해고, 경제성장률 둔화 등 역풍이 거세게 불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5년 내 자체 제련시설을 갖출 것' 등을 조건으로 원광 수출을 재개했다.
◇ 조코위 "원자재 수출국 탈피" 선언…수출금지 '고삐'
인도네시아는 2019년 말 니켈 원광 수출 금지를 전격으로 발표하면서 다시 고삐를 죄기 시작했다.
니켈 원광을 이미 다 실은 상태에서 인도네시아 항구 출항이 갑자기 금지된 한국 선박 등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으나, 현지 정부는 예외 없이 밀어붙였다.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해 글로벌 배터리 생산업체들은 배터리 주원료인 니켈을 확보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에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하는 등 직접 투자에 나섰다.
2020년 개정 광물법에 따르면 2023년 6월 11일부터 광물 수출이 대부분 중단될 예정이지만, 조코위 대통령은 중단 시기를 더 앞당기겠다는 신호를 줬다.
그는 이달 10일 "니켈 원광 수출 중단 이후 니켈 관련 수출이 금액 기준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며 "이러한 거대한 도약을 보크사이트, 구리, 주석, 금 등 다른 광물에도 적용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조코위 대통령은 이를 위해 우선 올해와 내년에 보크사이트와 구리 원광 수출을 각각 금지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아울러 팜오일 원유(CPO)도 언젠가 수출을 중단할 예정이며, 석탄 수출도 단계적으로 축소해 갈 것이라고 지난해 여러 차례 밝혔다.
석탄 역시 세계 1위 수출국인 인도네시아는 자국의 발전용 석탄이 부족하다며 1월 석탄 수출금지를 전격 발표하는 바람에 100여척의 선박이 보르네오섬 칼리만탄 광산 앞바다에서 선적 재개 지시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잇단 '막무가내식' 수출 중단 조치가 국제적 갈등을 불러오지만, 조코위 대통령은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당하는 것은 두렵지 않다"며 강경한 의지를 밝혔다.
이에 인도네시아의 대형 광산업체들은 더는 제련소 건설을 미룰 수 없다며 투자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고, 인도네시아산 광물 주요 수입국들은 다른 나라로 눈을 돌려 수입선 다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제로 프리포트-맥모란은 작년 10월 인도네시아 동부자바 그레식에 30억 달러(3조6천억원) 규모의 역대 최대 구리 제련소 건설 공사를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2020년 기준 19개의 광물 제련소를 2024년에는 48개까지 늘린다는 목표다.
특히, 2014년 때와 마찬가지로 광물 원광 수출금지가 무역수지와 경상수지 악화를 가져오더라도 단기적인 영향일 뿐 결국은 글로벌 업체들이 원재료가 있는 인도네시아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굳혀 관련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noano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