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티=연합뉴스) 김상욱 통신원 = 13일(현지시간) 오전 7시 40분, 카자흐스탄 최대도시 알마티의 한국총영사관 앞마당.
채 가시지 않은 어둠을 뚫고 여행 짐을 챙겨 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8일 전에 인천공항으로 떠날 예정이었으나 예상치 못했던 카자흐스탄 유혈시위 사태로 인해 발이 묶여 있던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탑승객들이었다.
업무차 서울로 출장 가는 교민 사업가, 주재원, 한국의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는 학생, 어린 자녀 2명과 함께 주한 카자흐대사관에 부임하는 외교관 가족, 선교활동을 마치고 귀국하는 선교사 부부 등 국적도, 직업도, 나이도 다양했다. 하지만 기약 없는 기다림 끝에 마침내 다시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됐다는 설렘과 남아 있는 불확실성에 따른 불안감이 교차하는 표정은 한결같았다.
공항까지 가는 길은 아마도 이들의 인생에서 가장 초조한 여행길이었는지도 모른다. 같은 버스를 타고 그 길에 동행했다.
박내천 총영사를 비롯한 주알마티총영사관 직원들은 탑승객들의 명단을 꼼꼼히 확인했다. 태경곤 영사는 "알마티시가 빠르게 안정화되긴 했지만 우리 국민들이 좀 더 안전하게 알마티공항까지 이동할 수 있도록 전용버스를 준비했다"면서 "주재국 경찰과 사전 협조를 통해 에스코트용 패트롤 차량도 지원받았다"고 말했다.
버스 두 대는 예정대로 오전 8시 30분 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교민 사업가 K씨는 "알마티공항 정상화가 예상보다 늦어져서 걱정했는데, 그나마 오늘 뜰 수 있게 되어 무척 다행이고 무사히 이륙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왔다"고 말했다.
다른 교민 승객 L씨는 "서울 출장이 지체되는 바람에 추가 선적 계약과 대금 송금이 늦어져서 사업에 다소 차질은 생겼지만 무엇보다 알마티 사태가 조기에 정상화되어 기쁘다"면서 "이번 사태로 좀 더 나은 사회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사업확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자녀 3명과 함께 귀국하는 Y씨는 "자녀들의 비자문제로 인해 지난해에 예정되었던 출국일정이 연기됐다"면서 "어린 자녀들과 함께 출국준비를 하다 보니까 알마티공항 정상화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고 힘들었다"고 말했다.
탑승객을 실은 전용버스는 총영사관을 출발한 지 30분 만에 알마티공항에 도착했다.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평화유지군이 공항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검문검색을 실시하고 있었다. 무장군인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펼치는 공항의 풍경은 정상을 되찾은 알마티 시내와는 확연히 달랐다.
탑승객들은 공항에 미리 나와 있던 총영사관 직원의 안내에 따라 짐을 내려 공항 터미널로 걸어서 이동했다.
아직도 살벌함이 남아있던 공항이지만 탑승권을 받는 항공사 탑승 데스크만큼은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한 분위기에서 업무가 진행되고 있었다. 출국심사를 마친 승객들은 공관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탑승구로 들어갔다.
12시 20분부터 기내 탑승이 시작된 지 50여분 만인 오후 1시 12분, 아시아나 여객기는 승무원 8명을 포함한 탑승객 47명을 태우고 알마티공항을 이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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