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美 떠나자 안보·경제 대안 필요…中, 美와 경쟁속 우군 필요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새해 벽두 중동 국가 외교장관 6명이 잇달아 중국을 방문하는 등 중국과 중동의 상호 접근이 눈길을 모은다.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오만, 바레인 외교장관이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중이고, 터키 외교장관이 12일 중국을 찾은 데 이어 이란 외교장관이 14일 중국을 방문할 계획이다.
내달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수도 베이징에서 입국자 3주 시설 격리를 포함한 고강도 방역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장쑤(江蘇)성 우시(無錫)에서 중동 외빈들을 맞았다.
왕 부장은 11일 나예프 알 하즈라프 GCC 사무총장과 회동한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중국과 GCC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 구축,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마무리, 자유무역지대 설치 등을 최대한 빨리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12일 왕 부장은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교장관, 아흐메드 나세르 무함마드 알사바 쿠웨이트 외교장관과 각각 회담했다.
터키와는 원자력 발전과 신재생에너지, 5G,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등에서, 쿠웨이트와는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와 농업·식량안보·신재생에너지·5G 등 분야에서 각각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외교가에서는 중동 외교장관들의 이번 '방중 러시'를 미국의 최근 대외전략 기조에 따른 대 중동 영향력과 존재감 감소와 연관지어 보고 있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갈수록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여름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 철수한 것을 계기로 중국과 중동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서로 통하게 됐다는 것이다.
중동 국가들은 미국이 중동에서 조금씩 발을 빼는 가운데 안보와 경제 측면에서 미국의 역할을 대신할 강대국의 존재가 필요하고, 중국은 미국과의 전략경쟁 국면에서 에너지 안보상 중요한 의미를 갖는 중동과의 협력을 강화할 이유가 충분한 것이다.
중국 관영 영자지인 차이나데일리는 13일자 사설에서 "미국이 에너지 자급을 이루면서 중동에서 아시아·태평양으로 초점을 전환했고, 중동 국가들도 이제 동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신문은 중동 국가들이 중국과 협력을 강화하려 하는 것은 이런 이유만이 아니라면서 중국의 일대일로와 사우디의 산업 다각화를 위한 '비전 2030' 전략 간 연계를 사례로 들었다.
신문은 또 "카자흐스탄에서 일어난 일(최근 반정부 시위)은 외부세력이 중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려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중국은 중동의 장기적인 안정과 재활성화를 실현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촉진할 것"이라고 썼다.
외교부 산하 외교안보연구소 인남식 아중동연구부장은 13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중동 국가들은 미국의 아프간 철수, 이라크에서의 전투 임무 종료 등을 보면서 미국의 '안보 우산'과 미국과의 경제협력망 등이 과거와 같지 않다는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 부장은 이어 "중동의 권위주의 국가들로선 미중 전략경쟁 구도에서 미국이 중동에서 발을 뺀다면 중국을 통해 헤징(hedging·리스크 관리 차원의 대안 모색)을 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중동 특정 국가가 중국과 '밀월' 관계를 형성하지 않도록 견제하려는 라이벌 의식이 병존할 것"이라며 중동 국가들의 대 중국 접근을 해석했다.
이런 가운데 그동안 이해관계가 복잡한 중동에 가급적 개입을 자제해왔던 중국이 대 중동 영향력 확대를 본격적으로 모색할지 주목된다.
미국이 대 중국 포위망 구축을 위해 외교와 군사력을 인도·태평양 전략에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중동이라는 '전략적 무주공산'에서 존재감을 키우려 할 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중국으로선 이미 대규모 원조를 통해 관계를 다져놓은 아프리카에 이어 중동을 또 하나의 우군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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