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또 무너진다] 와우아파트 붕괴로 시작된 50년 흑역사…후진적 인재 반복

입력 2022-01-16 06:01   수정 2022-01-16 13:28

[이러다 또 무너진다] 와우아파트 붕괴로 시작된 50년 흑역사…후진적 인재 반복
1995년 삼풍백화점·2014년 마우나리조트 붕괴 이어 작년·올해 광주 참사까지
전국 건설현장 4만5천729곳…전문가 "공급에만 급급하면 언제든 유사사태 재발"



(서울=연합뉴스) 홍국기 기자 = 대한민국 안전에 다시 비상등이 켜졌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자랑하며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후진적 참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이번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의 외벽 붕괴사고는 안전을 도외시한 또 하나의 '인재'(人災)라는데 이견이 없다. 신축 중이던 39층짜리 아파트의 38층부터 23층까지 외벽이 차례로 무너져 내렸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악몽을 떠올리기도 한다.
특히 국내 시공능력평가 9위의 유명 대형 건설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이 지난해 6월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참사(사망 9명, 부상 8명)에 이어 7개월 만에 또다시 비슷한 사고를 냈다는 점에서 안전불감증이 빚은 참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7개월 전 재발방지대책 마련 약속은 말 그대로 '빈말'이 됐다. 그럼에도 정 회장은 현장 안전책임의 직접적 라인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법적 처벌은 피해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이 같은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차제에 부실 공사를 야기하는 불법 하도급을 비롯한 건설 현장의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해야 하고, 관련 법과 제도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그간 국내에서는 인명 피해가 수반된 크고 작은 건설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먼저 가장 대표적인 후진국형 건축물 붕괴 참사는 1970년 4월 8일 새벽 서울시 마포구 창전동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시가 지상 5층, 15개 동 규모로 시민아파트를 준공한 지 석 달여 만에 한 동이 무너져 내리면서 가파른 경사 밑에 있던 판자촌까지 덮쳤다.
이 사고로 아파트 주민 33명이 사망했고, 38명이 다쳤다. 판자촌에서도 1명의 사망자와 2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무리한 불도저식 개발 방법과 낮은 공사비 책정, 허술한 기초공사, 짧은 공사 기간 등 총체적인 부실이 낳은 충격적인 참사였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파트 받침기둥이 건물 무게를 지탱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산비탈에 축대를 쌓고 아파트를 지었으나 받침기둥의 철근량 부족으로 정상 하중의 세 배에 달하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붕괴한 것이다.
그러나 사고의 근본 원인은 당시 해당 동을 시공한 대룡건설이 무면허 토건 업체에 하청을 주고, 이 과정에서 공사비를 떼먹는 비리가 부실 공사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됐다.



1990년대 들어서는 아파트, 교량, 백화점이 연이어 무너지는 초대형 참사가 잇따랐다.
1993년 1월 7일 새벽에 발생한 충북 청주시 우암동 우암상가아파트 붕괴 사고는 사망자 28명, 부상자 48명의 인명 피해를 낳았다. 이재민도 370여명에 달했다.
애초 지하 1층∼지상 3층으로 허가받았지만, 건설 과정에서 무리한 설계 변경을 통해 증축하면서도 기초 등 구조 보강작업은 제대로 하지 않아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또 불량 골재가 사용된데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의 경우 철근을 설계에 맞춰 배열하는 배근 간격도 기준치에 미달하거나 불균형한 상태로 시공된 것으로 조사됐다.
1994년 10월 21일에는 서울 한강 성수대교의 상부 철골구조물(트러스)이 무너져 내려 달리던 승용차 2대와 경찰 승합차 1대, 버스 1대가 추락했다.
이 사고로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다치면서 사회 전반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성수대교는 애초 공사 기간이 3년으로 계획됐으나 공기가 6개월가량 앞당겨졌고, 다리 상판을 떠받치는 트러스 수직재의 용접 부위도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건설사의 부실시공뿐 아니라 당국의 형식적인 안전 점검과 땜질식 사후 관리가 더해져 빚어진 원시적인 인재였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발생한 서울 서초구 서초동 5층짜리 상품백화점 붕괴 사고는 역대 최악의 초대형 참사로 기록됐다.
사망자 502명, 부상자 937명, 실종자 6명 등 1천445명에 이르는 인명 피해는 한국전쟁 이후 단일 사고로는 최대 규모다. 희생자 보상액을 포함한 재산상 피해도 수천억원에 달했다.
사고 원인은 복합적이었다.
무엇보다 설계와 감리를 동일인이 시행함으로써 애초부터 내실 있는 안전관리가 이뤄지지 못했다.
특히 당초 4층 건물이 막판 무리한 설계 변경을 통해 5층으로 증측되고, 시공 능력이 떨어지는 하도급 업체에 저렴한 가격으로 공사가 재발주되는 등 부실한 운영과 그에 따른 비리가 이때도 마찬가지로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사고 직후 재난관리법이 제정돼 현재의 재난안전관리기본법에 이르렀고, 건축물에 대한 안전성 평가 등급 판정도 처음으로 시도됐다.
당시 시행 초기 단계였던 시설물안전관리특별법도 조기에 정착하는 등 법적인 후속 조처가 잇따랐지만, 건축물 붕괴 사고의 비극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2000년 이후에도 경기 이천 물류창고 붕괴(2005년), 서울 강남 나산백화점 붕괴(2008년) 등 사망자가 발생한 중대 사고가 꼬리를 물었다.
2014년 2월 17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의 마우나리조트 체육관이 붕괴하면서 10명이 사망하고, 101명이 부상한 사고는 2000년대 들어 인명 피해가 가장 큰 규모의 건축물 붕괴 참사다.
공사는 정식 허가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이뤄졌고, 지붕 형태도 설계 도면과 다르게 시공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원도급 시공사가 공사비의 5%를 차감한 뒤 건설 면허가 없는 무자격 시공업자에게 하도급을 주는 '후진국형 불법 하청 관행'이 과거와 똑같이 반복된 것으로 드러났다.
과거에서부터 이어진 근본적이고도 뿌리 깊은 병폐가 근절되지 않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주택공급을 대폭 확대할 방침인 가운데 철저한 안전 대책 마련 없이 물량 늘리기에만 급급할 경우 앞으로도 후진적 참사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토교통부 집계 결과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공사비 1억원 이상의 건설 현장은 총 4만5천729곳에 달한다. 공공 현장은 2만245곳, 민간 현장은 2만5천484곳이다.
이 가운데 약 3만곳을 대상으로 정부가 긴급 안전 점검을 벌이기로 했지만, 그간의 관행으로 볼때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면서 위험 요인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섞인 지적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정부가 집값 상승의 문제를 공급 물량 확대로 풀겠다는 의도는 바람직하다"면서도 "다만 불법 하청으로 이어지는 고질적인 관행과 현장의 '빨리빨리' 문화를 완전히 뿌리뽑는 안전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이번 붕괴 사고와 같은 유사한 사태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redfla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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