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사고후 '총체적 안전불감증' 여론 뭇매에 회장 사퇴 카드로 진화 시도
재시공·보증기간 확대 대책 내놨지만 근본대책 못돼…여론은 여전히 냉랭
국토장관 "가장 강한 패널티 줘야"…중징계 부담까지 커져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정몽규 HDC[012630] 회장이 17일 서울 용산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로 또다시 국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재개발 참사 이후 두 번째이면서 이달 11일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가 발생한 지 6일 만이다.
정 회장은 이날 "광주 사고 피해자 가족과 국민께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며 화정아이파크 전면 재시공, 구조 보증기간 확대 등 추가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고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도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 회장이 내놓은 방안은 근본 대책이라기에는 미흡하다는 의견이 많아 땅에 떨어진 신뢰를 단기간 내에 회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현대산업개발 회장직 사퇴에 일각 "반쪽짜리" 지적…재발 대책도 미흡
정 회장은 잇단 광주 붕괴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결국 현대산업개발 회장 자리에서 사퇴했다.
정 회장은 2018년 그룹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으나 회장직은 유지하며 현대산업개발 경영에 관여해 왔는데 그 자리도 내놓겠다는 것이다.
총수로서 이번 사고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분양 계약자와 수주 현장 등에서 확산하고 있는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회사 관계자는 "앞으로 현대산업개발의 경영은 전적으로 대표이사 등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조치라는 비판도 나온다.
정 회장이 이날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사퇴하지만 "대주주의 책임은 다하겠다"며 지주사인 HDC 대표이사 회장직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해 앞으로도 현대산업개발의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쪽짜리, 형식적인 퇴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오히려 당장 화정아이파크 붕괴 현장의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선 정 회장의 사퇴 발표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는 등의 부정적인 반응이 지배적이다. 이번 사퇴가 사고의 책임을 피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사과보다는 책임을 져라", "물러날 게 아니라 사태 해결을 책임지고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 회장이 이날 사태 수습 방안을 언급했지만 당장 지난해 발생한 광주 학동 참사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화정아이파크 사고까지 더해지며 사고 수습이 원활하게 진행될지도 미지수다.
정 회장은 이날 입주자 대책으로 "구조안전점검을 통해 문제가 있다면 수(기)분양자 계약 해지는 물론 완전 철거와 재시공까지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광주시와 사고 현장 입주민들이 주장하는 "전면 철거 후 재시공해달라"는 요구에 대한 답변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시공 결정은 안전진단 후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 경우에 한하는 '조건부' 대책이다. 이와 반대로 일부 분양 계약자 가운데선 전면 재시공보다 빠른 입주를 원하는 경우도 있고, 입주 예정자에 대한 피해보상 문제도 남아 있어 사태 수습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전면 재시공 결정 시 막대한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도 미지수다.
현대산업개발은 아파트 분양을 위해 대한주택보증의 분양보증은 받았지만, 이번처럼 현장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에 대비하는 민간 보험사의 건설공사보험은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미 공사가 끝난 건물을 재시공하려면 순수 건축비도 비싸지만, 철거 비용 또한 막대하다"며 "현대산업개발 입장에서는 최소 수천억원의 비용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결국 현대산업개발 입장에서는 전면 재시공 단지를 최소화하려고 할 가능성이 크고, 이 경우 입주 예정자들과의 협의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정 회장이 구조 부분의 하자보증기간을 현행 10년에서 30년으로 늘리겠다고 한 것도 "근본 대책으로 미흡하다"는 의견이 많다.
한 건설 전문가는 "이번 광주 사고를 보면 현대산업개발이 초고층 아파트 건설에 있어 콘크리트 양생, 구조물 보강 등 기본 중의 기본을 지키지 않고 시공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며 "이는 시공 관리와 안전 관리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크다는 방증인데 건물이 무너지고 나서 보증기간만 늘리는 게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전반적으로 업계에는 총수가 사고 발생 후 내내 침묵하다 6일 만에 공식 석상에 나와 내놓은 대책으로 보기에는 미흡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 사태 수습 장기화 불가피…악화된 여론 되돌기엔 역부족 분석
이번 사태로 현대산업개발에 대한 여론은 나빠질 대로 나빠진 상태다. 대형 건설사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총체적 안전불감증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다.
광주 운암 등 기존 수주 현장에서는 계약 해지 요구가 빗발치고, 안양 관양 현대 재건축 단지는 현대산업개발의 시공사 선정 입찰 참여를 거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존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선 단지명에서 '아이파크' 브랜드를 떼겠다는 브랜드 퇴출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현대산업개발이 붕괴 사고 이후 대형 로펌을 선임해 책임 회피에 나섰다며 분노하는 글이 올라왔고, 현대산업개발과 정 회장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여론도 빗발치고 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현대산업개발에 대해 "신뢰하기 어려운 참 나쁜 기업"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현대산업개발은 앞으로 공공 공사는 물론 재건축·재개발 사업 등 신규 수주에도 큰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신뢰도 저하에 따른 손실은 액수로 환산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법적인 책임도 커질 전망이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은 앞서 지난 12일 광주 서구 화정동 신축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 현장을 찾아 "위법 사항은 무관용 원칙으로 엄중 처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일단 사고 책임자에 대해 전례 없이 강도 높은 처벌이 가해짐은 물론 회사에도 일정 기간 영업정지 등의 중징계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노 장관은 이날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선 "한 번도 아니고 반복적으로 큰 사고를 냈다. 법이 규정한 가장 강한 페널티(처벌)가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발언 수위를 높여 이보다 높은 최고 수준의 징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법에서 정한 가장 강한 처벌은 등록말소, 사실상 퇴출이다.
일각에서는 "회장이 건설업은 돈 벌어주는 '캐시카우' 정도로 생각하고, 사업다각화를 명분으로 다른 업종에 관심을 보이면서 축구협회장 일에 더 열성이니 직원들이라고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졌겠느냐"며 정 회장의 마인드가 변하지 않는 한 조직 내 체질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내놓는다.
한 대형 건설사의 고위 임원은 "건설 현장은 언제나 위험이 있고 어느 회사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면서도 현대산업개발이 아파트 위주의 주택건설업자 마인드에서 벗어나 교량·플랜트·원전 등을 수행하는 1군 건설사 수준의 안전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조직 내에 뿌리 깊게 이식하지 못하면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재현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sm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