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발발 예상 반반…'우크라이나를 구하자' 깃발 나부껴
겉보기에 평온하지만 전쟁 임박 징후에 불안, 긴장 감돌아
젊은이들 "전쟁 나면 참전" 단호한 각오 밝혀
(키예프[우크라이나]=연합뉴스) 김승욱 특파원 = 수도 키예프에 도착한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정세는 급박하게 돌아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북쪽에 접한 벨라루스 국경에 훈련을 명분으로 군사력을 배치했다는 뉴스가 긴급히 전해졌다.
우크라이나는 이제 동쪽에 이어 북쪽 국경에서도 러시아군의 탱크와 맞닥뜨리게 됐다.
키예프에서 만난 시민들도 온통 러시아의 침공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도심 마이단 광장에서 만난 리자 클리치코 씨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이 정말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죠. 굉장히 파괴적이고 두려울 테니까요."
택시 기사 블라드미르 씨도 "10년 전 누군가가 나에게 러시아와 전쟁이 날 것 같냐고 물었다면 '바보 같은 소리'라고 했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다. 전쟁은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표정도 먹구름이 잔뜩 낀 이날 영하의 날씨처럼 잔뜩 궂은 느낌이었다.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병합한 러시아는 지난 연말부터 우크라이나 국경에 10만 명 이상의 병력을 배치해 긴장을 높였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러시아가 언제든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다고 본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침공 위협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곳곳에서 침공이 임박했다는 징후도 포착된다.
지난주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는 러시아와 연쇄 회담에 나섰지만 모두 양측의 입장차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와 나토의 동진(東進) 중단 등을 요구했지만, 서방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라고 선을 그었다.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외교적 창이 점점 닫히고 있는 셈이다.
우크라이나는 당장이라도 동서 열강의 전쟁터가 될 처지로 몰리게 됐다.
전쟁을 목전에 뒀지만 키예프의 대형 마트나 시장에서는 아직 사재기나 매점매석은 찾아볼 수는 없었다.
키예프를 동서로 나누는 드네프르강의 다리는 평소와 같이 출퇴근 차량이 몰려 교통체증이 빚어졌다.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잃어본 키예프 시민들의 러시아에 대한 반감은 요즘 커질 대로 커졌다고 한다.
서울의 광화문 광장 같은 키예프의 마이단 광장에선 연일 반러시아 집회가 열리고 있다. 이곳은 2004년 부정선거가 촉발한 민주화 운동인 오렌지 혁명의 구심점이 된 곳으로 우크라이나 국민의 여론이 집약되는 곳이다.
광장 곳곳에서 '우크라이나를 구하자'(Save Ukraine) 라고 적힌 깃발이 삭풍에 이리저리 불안하게 나부끼고 있었다.
권위주의 강대국을 바로 옆에 두고 살아야 하는 우크라이나의 현재 상황을 웅변하는 듯 했다.
이곳에서 만난 시민에게 전쟁 가능성을 묻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답과 '그렇지 않을 것' 답이 거의 절반으로 나뉘었다.
아버지가 우크라이나 군인이라는 안드레이 마카레츠 씨는 "아버지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답했다.
성을 밝히지 않은 갈리나 씨도 "우크라이나에 러시아인 수백만 명이 살고 있다"며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면 이들이 모두 죽게 될 텐데 대체 푸틴(러시아 대통령)은 무슨 생각인지 머릿속을 한번 들여다보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쟁은 피하고 싶지만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면 목숨을 걸고 조국을 지키겠다는 키예프 젊은이들의 의지는 분명해 보였다.
마카레츠 씨는 "전쟁이 나면 당연히 참전할 것"이라며 "나뿐만 아니라 내 친구나 주위 사람들도 그럴 생각"이라고 말했다.
갈리나 씨는 "이 나라는 우리가 지킬 것이다. 이대로 (러시아에) 복종한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없는 것"이라며 "이 문제에 대해서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kind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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