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자 동선에서 드러난 중국 농민공의 고단한 삶

입력 2022-01-20 09:54  

코로나 확진자 동선에서 드러난 중국 농민공의 고단한 삶
18일간 32개 공사현장서 근무…대부분 철야 작업



(베이징=연합뉴스) 김진방 특파원 = "이 감염자의 동선을 확인한 결과 18일간 32곳에서 근무를 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지난 19일 중국 베이징시 코로나19 통제센터가 주최한 코로나19 브리핑에서 전날 양성 판정을 받은 농민공(중국 농촌에서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이주한 노동자) A씨의 동선이 공개됐다.
A씨의 동선이 공개되자 중국 누리꾼들은 코로나19가 만연한 이런 시기에 많은 곳을 돌아다닌 A씨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특히나 베이징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베이징에서 오미크론과 델타 변이가 동시에 발생해 방역 수위가 최고 수준으로 올라간 터라 비판적인 의견을 내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A씨의 동선이 좀 더 구체적으로 공개된 뒤 비난의 목소리는 눈 녹듯 사라졌다.
오히려 A씨의 처절하고 고단한 삶에 동정과 연민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베이징시 당국이 공개한 A씨의 동선을 따라가 보면 절로 숙연함이 느껴진다.
A씨는 산둥(山東)성에서 베이징으로 상경한 농민공으로 주로 건설 현장에서 건설 자재와 폐기물을 나르는 일을 했다.
18일간 32곳의 건설 현장을 돌아다닌 것으로 확인됐으니 어림잡아 하루 평균 2곳의 현장에서 일한 셈이다.
베이징의 경우 건설 현장에 자재를 옮길 수 있는 시간이 야간 또는 심야로 제한되기 때문에 A씨는 주로 철야 근무를 했다.
A씨는 철야를 한 날에도 오전에 잠깐 숙소나 현장에서 눈을 붙이고 낮 동안에도 일거리를 찾아 쉴새 없이 일했다.
새해 첫날인 1일부터 A씨는 베이징 중심부의 한 호텔에서 자재를 나르는 일을 했다. 오후 11시에 시작된 일은 다음 날 오전 5시가 다 돼서야 끝이 났다.
A씨의 철야 작업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됐다. 4일에는 철야를 조금 일찍 마치고 오전 2시에 퇴근을 한 뒤 당일 오후 2시에 두 번째 현장에서 추가 근무를 했다.
이렇게 쳇바퀴 돌듯 건설 현장을 돈 A씨는 18일 중 11일 철야 근무를 했고, 많게는 하루에 5개 현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A씨는 고향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하루 전인 17일에도 건설 현장을 찾았다. 춘제를 1∼2주 앞두고 귀향하는 다른 농민공들처럼 A씨도 전날 마지막 일을 마치고 18일 산둥으로 가는 기차를 탈 참이었다.
그러나 목돈을 손에 쥐고 고향으로 향하려던 A씨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기차를 타기 전 받은 핵산 검사에서 '양성' 판정이 나온 것이다.
베이징 남역에서 고향행 기차에 올라탄 A씨는 방역 요원의 안내에 따라 다시 기차에서 내려야 했다. 방역 요원을 따라 역을 빠져나온 A씨는 구급차를 타고 격리 병원으로 이송됐다.
중국은 구급차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거리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비용이 500위안(약 10만원) 정도다.
중국 누리꾼들은 A씨의 안타까운 사연에 후원금 모금을 제의하는 등 응원을 보냈다.
특히 A씨가 3년 전 실종된 아들을 찾기 위해 베이징에 와 일을 한다는 사연이 알려지면서 동정 여론은 더 뜨거워졌다.
누리꾼들은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올라온 관련 뉴스에 "사는 게 참 쉽지 않다. 밤낮없이 저렇게 일을 할 수 있을까", "동선이 적힌 글만 봐도 눈물이 난다", "어떤 사람들은 명품백을 사려고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어떤 사람은 아들을 찾기 위해 미친 듯이 막노동을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병원에서 잠시라도 몸을 누이기를" 등 댓글을 달았다.
초기에 무증상 감염자로 분류됐던 A씨는 결국 20일 베이징 방역 당국으로부터 확진자 판정을 받았다.


china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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