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硏 연구원, 지구에서 가장 추운 남극기지서 빙하시추 참여

입력 2022-01-21 16:09  

극지硏 연구원, 지구에서 가장 추운 남극기지서 빙하시추 참여
러시아 기지서 '가장 오래된 얼음 찾기'…120만년전 기후 복원이 목표

(서울=연합뉴스) 박성민 기자 = 극지연구소는 허순도 책임연구원이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남극 보스토크 기지(Vostok Station)에서 진행 중인 심부빙하 시추에 참여한다고 21일 밝혔다.
보스토크 기지는 연 평균 기온이 영하 55도로 지구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남극점의 연 평균 기온은 영하 49도이다.
1983년 7월 보스토크 기지에서는 영하 89.2도가 관측됐다. 이는 인류가 직접 측정한 최저 기온이다.



이 기지는 구소련이 남극 내륙 연구를 위해 1957년 문을 열었다. 현재는 러시아가 운영한다.
보스토크 기지 지역에는 3천700m 두께의 빙하와 지금까지 확인된 빙저호(빙하 아래 위치한 호수) 가운데 가장 넓은 우리나라 수도권 넓이의 '보스토크호'가 존재해 과학적 연구 가치가 높다.
빙저호는 외부와 차단된 채 오랜 시간 진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독특한 생태계가 발달한 곳으로 알려졌다. 지자기 남극과 가까워 우주과학 연구에도 유리하다.
1990년대 러시아와 미국, 프랑스가 공동으로 '5G' 시추공에서 약 3천700m 깊이까지 빙하를 시추했는데, 이 깊이는 역사상 최대였다.
구소련은 1970년대부터 남극에서 빙하를 시추했으며, 시추공에 순서대로 번호를 붙여 '5'는 다섯 번째를 의미하며 'G'는 깊다는 뜻의 러시아어 'glubokay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번에 허 책임연구원이 참여하는 시추 작업은 러시아가 남극 '돔 C'(Dome C) 빙하에서 확인된 80만년보다 더 오래전 과거 기후를 복원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러시아는 5G 시추공 재시추에 나섰다. 3천300∼3천610m 깊이가 시추 대상이며, 이 구간 빙하에는 50만∼120만년 전의 흔적이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얼음 연구에 한국인이 참여한 것이다. 과거 기후변화 기록을 120만년 전까지 복원하고, 빙저호의 지질과 미생물을 밝히는 것이 이번 연구의 목표이다.
시추 작업은 12명의 전문가가 팀을 나눠 3교대로 24시간 쉬지 않고 진행한다.
허 책임연구원은 지난 4일 기지에 도착했으며, 유일한 외국인으로 이번 작업에 참여한다.
허 책임연구원은 20년 이상 다양한 극지 현장과 고산빙하 탐사를 경험했으며, 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장으로도 근무한 베테랑이라는 게 극지연구소의 설명이다.
이번 시추 참여는 극지연구소가 2020년 러시아 극지연구소와 맺은 공동연구를 위한 업무협약에 따른 것이다. 5G 시추에 이어 내년부터는 보스토크 기지 인근에서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얼음을 목표로 공동 심부빙하 시추도 추진할 계획이다.
허 책임연구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기상 악화로 보스토크 기지까지 가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보스토크 기지는 그 어떤 극지 현장보다 추운 데다 고도가 높고 기압이 낮아 조금만 움직여도 호흡이 가쁘고 깊이 잠들기가 힘들다는 게 허 책임연구원의 전언이다. 남극 기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탓에 최근에 건설된 우리나라 기지보다 불편한 점도 많다고 한다.
허 책임연구원은 "극한의 환경과 열악한 시설 탓에 어느 때보다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대한민국 대표로 최고의 극지 현장에서 함께 연구하고 있다는 자긍심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유일한 외국인이라 동료들로부터 따뜻한 관심을 받고 있다"며 "특히 '마마무' 팬이라고 밝힌 기지 월동 대장은 한국어로 간단한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고 전했다.



강성호 극지연구소장은 "지금 남극에서는 '가장 오래된 얼음 찾기'를 두고 선진국을 중심으로 치열한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며 "극지연구소는 다른 나라와 협력을 통해 시추기술을 확보하고, 과거 기후 기록을 복원해 미래 기후변화에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min22@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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