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러-서방, 뿌리깊은 불신 뚫고 '우크라 위기' 해법 찾을까

입력 2022-01-24 06:00   수정 2022-01-24 06:35

[특파원 시선] 러-서방, 뿌리깊은 불신 뚫고 '우크라 위기' 해법 찾을까
푸틴, 나토 지속 확장에 '배신감'…서방 "러, 무력으로 우크라 주권 침해"
서로 '약속' 위반 주장하며 비난전…향후 협상 '전쟁' 막을 마지막 기회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우크라이나 위기'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 간의 아슬아슬한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달 중순 미-러, 미-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실무급 연쇄 협상에 이어 지난주 말 미-러 외무장관의 담판이 있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 군대 철수와 긴장 완화 조치를 요구하는 서방의 주장과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배제, 러시아 인근 국가들로의 나토 공격 무기 배치 금지를 요구하는 러시아의 주장은 여전히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서방 진영에선 어차피 타협책이 나올 수 없는 협상이 끝내 결렬되면 러시아가 '할 만큼 했다'는 핑계를 내세우며, 계획했던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설 것이란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에 러시아는 '당초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계획이 없었다'고 항변하며, 오히려 서방이 우크라이나로의 진출 명분을 쌓기 위해 정부군과 친러 반군이 대치 중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도발을 일으키려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래저래 우크라이나가 포화(砲火)에 휩싸일 것 같은 불안한 긴장감이 이어지고 있다.
곱씹어보면 이 모든 갈등의 근원은 냉전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은 러시아와 서방 간의 불신(不信)에서 연유한다.
어쩌면 더 멀리 앵글로색슨족의 대영제국과 슬라브족의 러시아 제국 간 다툼과 대결의 기억이 남아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우크라이나 위기와 관련 러시아는 언론 브리핑 때마다 나토가 통일 독일 영역 너머로 추가 동진(東進)을 하지 하겠다고 한 1990년의 구두 약속을 파기했다고 지적한다.
그해 모스크바를 방문했던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이 소련군이 철수할 통일 독일에 나토군 주둔을 허용할지를 고민하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게 "나토 관할지는 동쪽을 향해 1인치도 이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약속은 이후 몇 차례에 걸친 나토의 옛 소련권 확장으로 물거품이 됐다는 주장이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나토에 대적하던 옛 소련권 군사동맹체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이었던 헝가리·폴란드·체코 등 3개국이 1999년 나토에 가입하자 베이커 전 장관의 약속을 거론하며 분노를 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에 협력했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04년 나토가 발트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과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옛 소련권 7개국을 또다시 회원국으로 끌어들이자 "개인적 배신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러시아는 또 2014년 우크라이나에 속했던 크림반도 병합을 비난하는 서방을 향해 당시 우크라이나와 관련한 합의를 먼저 깨트린 건 우크라이나와 유럽이라고 몰아붙인다.
당시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친서방 야권 지도자들과 조기 대선, 대통령 권한 축소 개헌 등의 정국 안정화 방안을 담은 협정에 합의하고 독일·프랑스·폴란드 3국 외무장관들이 이 협정에 보증국으로 서명했다.

그러나 야권 세력은 결국 이 협정을 무시하고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몰아낸 뒤 친서방 정권을 세우는 '혁명'을 성공시켰고, 서방 보증국들은 이를 지켜만 봤다는 것이다.
이후 친서방 우크라이나 정권들은 나토와 유럽연합(EU) 가입을 지속해서 추진하며 러시아에 적대감을 보인다고 러시아는 주장한다.
반면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주권 보장에 대한 약속을 저버리고 우크라이나를 자국 세력권으로 다시 끌어들이려 무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공격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크림병합을 꼽는다.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에 속했던 크림반도를 병합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영토적 통합성을 보장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위반했다는 지적이다.
1994년 체결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1991년 옛 소련에서 독립할 당시 세계 3위의 핵보유국이었던 우크라이나의 핵무기 폐기를 위한 협정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미국, 영국 간에 체결된 양해각서는 우크라이나가 보유 핵무기를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대가로 각서 서명국들이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안보, 영토적 통합성을 보장해 주기로 약속한 문서다.
우크라이나는 이 각서를 이행하는 차원에서 1996년까지 보유 핵무기를 모두 러시아로 넘겨 폐기했다.

하지만 각서 서명국인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영토적 통합성 보장 약속을 위반했다는 것이 서방과 우크라이나의 주장이다.
러시아는 또 1997년 우크라이나와의 우호 협력 조약을 통해 크림의 우크라이나 영토 귀속을 공식 인정했지만, 이 또한 뒤집었다는 비난도 더해진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이밖에 크림사태 이후 분리·독립을 선포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반군을 러시아가 지원하며 우크라이나의 영토적 통합성을 계속해 흔들고 있다는 비난도 멈추지 않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의 중재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참여해 2015년 체결했던 돈바스 평화협정(민스크 협정)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위기는 뿌리 깊은 러시아와 서방 간 불신이 1991년 소련 붕괴와 냉전 종식 이후에도 해소되지 않고 잠복해 있다가 크림병합 사태와 함께 증폭되면서 무력 충돌 위기로까지 악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와 서방이 '전쟁'을 막을 마지막 기회인 향후 몇 주간의 외교 협상을 통해 불신의 장막을 걷어낼 어떤 묘책(妙策)을 찾을 수 있을지에 세계의 이목이 온통 집중되고 있다.

cjyou@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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