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푸틴 대통령 재임 20년간 군사력 변모 조명
"무력·위협·해킹·선전·외교 융합한 강압…우크라 위기가 그 사례"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 위협이 수개월째 세계 주요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상대로 위험한 무력 도박을 벌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올까?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7일(현지시간) 구소련 붕괴 후 쇠락했던 러시아군이 현대화를 거쳐 위협적인 군대로 변모했으며,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힘을 과시할 만큼 외교정책에 중요한 수단이 됐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이 첫 임기를 시작한 2000년 러시아군 무기는 핵무기를 제외하면 빈 껍데기에 불과했다. 무기도 변변치 않은 체첸 반군 진압에 어려움을 겪었고 장교 막사에는 곰팡이와 쥐가 들끓고 병사들은 양말을 지급받지 못해 헝겊으로 발을 감쌀 만큼 처우가 열악했다.
그러나 20년간 현대식 정교한 군대로 탈바꿈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서 확연히 달라진 전투력을 과시하고 있다. 신속 배치 능력과 함께 정밀 유도무기를 갖췄고 지휘체계는 능률적으로 재편됐으며 병사들의 전문성도 높아졌다. 핵무기는 여전히 강력하다.
러시아군은 수년 전부터 푸틴 대통령의 핵심 외교정책 수단으로 부상했다. 크림반도 병합과 시리아 사태 무력 개입,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 분쟁 개입이 이어졌고 지난달에는 카자흐스탄에 군대를 파견해 친러시아 성향 대통령을 보호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제 위협과 무력 사용 가능성까지 동원해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영향권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가장 야심 찬 작전을 벌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든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외교정책을 펴는 푸틴 대통령의 전략은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기조를 반전시키면서 총 한 방 쏘지 않고 미국 행정부가 다른 외교 정책 현안들을 제쳐놓고 그동안 무시해왔던 크렘린의 불만과 씨름하게 했다.
분석가들은 2008년 조지아(그루지야) 공화국과의 영토분쟁이 푸틴 대통령이 군사력 강화에 나서게 된 전환점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어렵지 않게 조지아를 압도했지만 그 과정에서 러시아군의 낙후성이 그대로 드러나자 푸틴 대통령은 즉각 러시아군 현대화에 나섰다.
미 해병대 출신의 러시아 무기 전문가인 로버트 리는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 집결한 T-72B3 탱크는 다른 탱크보다 사거리가 2배인 유도 미사일과 함께 야간 전투에 대비한 열 광학시스템까지 장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흑해에 배치된 전함과 잠수함에 장착된 칼리브르 순항미사일과 접경지대에 배치된 이스칸다르-M 로켓은 우크라이나 국내 어디든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2020년 러시아 국방부에 따르면 러시아 공군은 지난 10년간 1천 이상의 항공기를 확보했다. 여기에는 최첨단 전투기 SU-35S가 포함돼 있으며. 이 전투기 일부는 2월에 진행될 합동훈련을 앞두고 벨라루스에 배치돼있다.
병력 규모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인식도 변했다. 러시아군의 징병제 의존도가 줄어든 대신 40만 명의 계약제 병사들의 역할이 커졌다. 군에 대한 처우도 월 임금이 1천달러 정도로 다른 부문보다 높을 정도로 개선됐고 연방정부는 군인들의 주택마련도 지원하고 있다.
장비 현대화와 함께 크렘린이 군사력을 사용하는 방식 역시 진화하고 있다.
이스라엘 라이히만대학 국제안보 전문가 드미트리 아담스키는 러시아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실제 무력과 위협을 외교와 사이버공격, 선전전을 융합한 강압이라는 새 접근법을 구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이 전략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군대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160㎞ 떨어진 벨라루스로 이동시키고 러시아 국영 매체는 우크라이나군이 침략을 준비하고 있다고 선전하면서 최근 해커들은 우크라이나 정부 사이트를 해킹해 "두려워하고 최악을 기대해라"라는 글을 남겼다.
전문가들은 특히 러시아가 꾸준히 증강해온 군사력을 시리아 사태 개입 등을 통해 실전에 적용해 그 능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고 검증까지 마친 것으로 보고 있다.
라이히만대학 아담스키는 "러시아는 정밀무기와 장거리 무기,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정보전 능력을 활용해 대규모 작전을 수행할 능력이 있음을 자신들은 물론 전 세계에 보여줬다"고 말했다.
나토 사령관을 역임한 필립 브리들러브 미군 대장은 중요한 것은 개별 무기시스템이 아니라 그들이 획득한 혁신적인 사용법이라며 "러시아군은 뛰어난 학습·적응 능력을 보이고 있고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런던 채텀하우스 러시아·유라시아 프로그램 마티외 불레그 연구원은 러시아군 현대화 등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을 막을 방법이 거의 없다며 푸틴 대통령이 마음만 먹는다면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scite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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