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가스 잠글라…유럽, 에너지대란 막으려 비상대응

입력 2022-01-28 11:59   수정 2022-01-28 15:44

러시아 가스 잠글라…유럽, 에너지대란 막으려 비상대응
카타르·미국산 천연가스 아시아 수출물량 유럽으로 우회
"전면 차단 시 뾰족한 수 없어…춥고 비싼 겨울 보낼 것"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전운이 짙어지는 가운데, 유럽이 에너지 대란을 막으려 비상 대응에 나섰다.
유럽은 연간 천연가스 필요량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데, 전쟁 발발시 러시아가 공급을 전면적으로 끊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미 CNN방송은 27일(현지시간) 분석 기사에서 "유럽은 러시아 가스 공급이 줄어들어도 살아갈 수는 있지만, 전면 공급 중단은 파멸적일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긴장 고조와 맞물려 초래될 수 있는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미국과 유럽 우방이 서둘러 비상 계획 마련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러시아가 유럽행 가스를 완전히 차단할 가능성은 극히 낮은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백악관 고위 관리는 러시아 연방 예산의 절반 정도가 석유와 가스 수출에서 나오는 현실을 지적하며, "러시아가 에너지 수출을 무기화한다면 큰 경제적 후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서방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 위기가 고조될 경우 러시아를 겨냥한 서방의 혹독한 제재에 대한 유럽의 일치된 지지를 분산시킬 방편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에너지를 무기로 삼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독일처럼 러시아에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 일부 국가들은 지금도 미국이 주도하는 러시아 제재에 미온적인 입장을 취해 동맹국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가 유럽행 천연가스 공급을 완전히 중단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해 미국은 러시아를 대체할 공급자를 찾기에 부심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우선 가능한 대안으로는 가스 운반선을 통해 해상으로 유럽에 액화천연가스(LNG)를 공급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카타르를 포함한 주요 가스 생산국이 가스 운반선을 이용해 유럽에 천연액화수소(LNG)를 보내는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한 외교적 노력에 나선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오는 31일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군주(에미르)를 만나 가스 공급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이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 카타르를 비롯한 주요 에너지 생산국과 대러시아 제재 시 에너지 공급 대책을 논의했다.
호주에 이어 세계 2위의 LNG 수출국인 카타르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 일부 국가에 이미 LNG를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카타르의 수출량은 유럽보다는 아시아가 5배 많아 유럽으로 수출량을 늘리려면 아시아 고객들의 양해를 얻는 게 필수적이다.
이런 까닭에 미국과 유럽이 이와 관련한 외교적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 소식통은 CNN에 전했다.
천연가스 주요 생산국인 미국은 이런 외교적 노력과는 별도로 직접 자국의 천연가스 운반선을 유럽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원유시장 분석업체 보텍사를 인용, 현재 20여 척의 천연가스 운반선이 미국을 떠나 유럽으로 가고 있고, 아직 행선지가 정해지지 않은 LNG 운반선 33척도 유럽으로 향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또한 최근 한국, 일본 등 미국산 천연가스 주요 구입 국가와 화상 마라톤 회의를 하고 이들 국가가 비용을 이미 지불한 미국산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돌리는 방안을 설득하려 한 것으로 전해졌다.
투자은행인 RBC 캐피털 마켓 원자재 담당자인 헬리마 크로프트는 이와 관련, "가스 공급에 있어 유연성을 발휘하려면 주요 가스 생산국과 아시아 구매자들 사이에 섬세한 논의가 수반돼야 할 것"이라면서도 아시아로 배정된 카타르와 미국의 LNG 수출분이 아시아 지역의 올겨울 온화한 날씨 덕분에 유럽으로 우회할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럽이 주목하는 또 다른 대안은 아제르바이잔을 통한 가스 공급량을 늘리는 방안이라고 WSJ은 소개했다.
비교적 조속한 작업이 가능한 펌프 보강을 거치면 아제르바이잔에서 터키를 거쳐 남유럽으로 공급되는 가스 공급량을 2배로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유럽은 기대하고 있다.
카드리 심슨 유럽연합(EU) 에너지담당 집행위원은 내달 4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해 이와 관련해 논의할 예정이다.
이밖에 유럽과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알제리도 최근 스페인으로의 가스 공급을 늘리기 시작했다.
자국 가스 생산량의 20%를 유럽에 공급하고 있는 노르웨이 역시 국영 석유기업에 가스정 2곳의 증산을 허용함으로써 향후 12개월 동안 유럽에 20억㎥의 가스를 추가로 공급하기로 지난 9월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이같은 대책 마련 부심에도 러시아가 유럽행 가스를 전면적으로 끊어버리면 뾰족한 대안이 없는 형편이라고 미 외교매체 포린폴리시(FP) 등은 지적했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에너지 전문가인 니코스 차포스는 "우크라이나를 통과해 공급되는 (러시아산) 가스 중단은 고통스럽기는 하겠지만,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에너지 공급을 전면적으로 끊는다면 파멸적일 것"이라며 "이 경우 러시아의 공급량을 대체할 만한 유의미한 수단이 유럽엔 없다"고 우려했다.
게다가, 유럽의 LNG 터미널이 연간 필요량의 43%를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인 고작 28개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대부분은 서유럽에 몰려 있는 까닭에 공급받은 LNG를 제대로 수용할 수 있느냐는 의문도 일고 있는 실정이다. 유럽에서 천연가스 수요가 가장 높은 곳은 중부 유럽과 동유럽이기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 리서치 회사인 래피던그룹의 로버트 맥널리 대표는 "글로벌 가스 시장에 여유가 많지 않다는 것이 엄중한 현실"이라며 "미국이 LNG 물량을 여기저기서 확보하는 것을 도울 수는 있겠지만 러시아에서의 공급량 손실을 만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주재 영국 대사 출신으로 유럽 정치 싱크탱크 유러피언 리더십 네트워크(ELN) 국장인 애덤 톰슨은 "만약 서방과 러시아의 관계가 악화하면 꽤 많은 유럽 국가가 매우 춥고, 값비싼 겨울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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