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연합뉴스) 한종구 특파원 = 28일 오전 중국 베이징 지하철 안은 평소와 달리 여행용 캐리어를 든 사람이 많았다.
옆자리에 앉은 한 중국인에게 물었더니, 퇴근 후 바로 고향에 가기 위함이란다.
29일부터 본격 시작되는 춘제(春節·중국의 설) 연휴를 앞두고 대륙의 대이동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강력한 코로나19 방역 정책으로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베이징에 사는 20대 여성 A씨는 올해 고향 가는 것을 포기했다.
베이징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하자 베이징에서 온 사람은 14일 격리로 고향의 방역 정책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A씨는 "춘제에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라며 "고향의 방역 정책이 너무 엄격하다"고 하소연했다.
허난(河南)성 자오쭤(焦作)가 고향인 또 다른 여성 B씨는 며칠전 고향의 방역 정책이 바뀐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사람이 자오쭤에 오면 시설격리(7일)와 자가격리(7일)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상 고향에 오지 말고 베이징에 머물러 있으라는 통보였다.
중국인에게 춘제는 명절 이상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
수천 년 중국 문화가 녹아 있는 것은 물론 중화인의 몸속에 흐르는 혈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생활하는 '다궁런'(打工人)에게 춘제는 가족과 함께 '녠예판'(年夜飯·섣달 그믐날 먹는 음식)을 먹으며 지난 1년간의 고단한 삶을 보상받는 시간이다.
2018년 개봉한 영화 '먼 훗날 우리'(后來的我們)의 주인공 린젠칭과 팡샤오샤오가 처음 만난 곳도 춘제 귀향 열차였다.
두 손도 부족해 머리에 짐을 이고 고향을 찾는 중국인의 모습에서 그들에게 춘제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베이징 등 확진자가 나온 지역의 방역 조치가 급격히 강화되자 정부 정책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국인들도 조금씩 생각이 바뀌고 있다.
한달 이상 도시 전체에 '봉쇄령'이 내려졌던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서 코로나19 음성 증명서가 없으면 진료를 할 수 없다는 병원 방침 때문에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해 산모가 유산하거나 환자가 숨지는 일까지 발생하면서 융통성 없는 방역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지방정부마다 앞다퉈 코로나19 전수 검사, 집단 봉쇄, 고향 방문자 격리 등 초강력 방역 정책을 내놓자 춘제에 고향에 가지 못하게 된 다궁런들의 참았던 불만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조부모를 만나기 위해 1천200㎞를 달려갔다가 초강력 방역 정책에 발걸음을 돌렸다는 어린 소녀들의 이야기는 중국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베이징에 사는 소녀들은 최근 춘제를 앞두고 할아버지·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고속열차로 5시간 30분 걸리는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까지 갔으나 베이징시 하이덴(海淀)구에서 온 사람은 모두 14일간 시설에 격리한다는 방침 때문에 돌아가야 했던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삼천리길을 달려온 두 손녀를 먼발치에서 바라봐야만 했다.
여기에 확진자의 동선과 시간 및 공간이 겹친다는 의미의 '시공동반자'라는 개념을 도입해 툭하면 코로나19 전수 검사(PCR검사)를 하는가 하면 제때 검사를 받지 않아 감염이 발생하면 책임을 묻겠다고 하고 있다.
공무원 사회에서 '확진자 제로' 지상주의가 만연하면서 일부 지방에서는 과학적 근거도 없이 고강도 격리 지침이 집행되고, 수시로 바뀌는 방역 지침이 국민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점도 불만이다.
'칭링'(淸零)으로 불리는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의 가장 큰 목적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권 보호'이지만 확진자가 폭증하고 있는 서구와의 경쟁에서 확고한 우위를 과시하겠다는 정치적인 목적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 현재 중국의 방역을 보는 많은 이들의 시각이다.
엄격한 '제로 코로나' 정책은 한동안 중국을 상대적 코로나19 안전지대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팬데믹 3년째를 맞은 중국을 '출구전략' 없는 딜레마에 갇히게 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정서적, 육체적 피로감은 커지고 있다.
A씨가 내년 춘제에는 고향에 갈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jk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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