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보호" vs "재판 받을 권리 박탈"
전임 금감원장 추진했다가 불발…현 금감원장 "필요하다면 개선 검토"
(서울=연합뉴스) 오주현 기자 =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보험 소비자 보호를 위한 '편면적 구속력'이 제시되면서 금융권이 주목하고 있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공약으로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의 편면적 구속력을 인정하겠다고 제시했다.
이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는 지난달 7일 열린 금융위원회 출범식에서 "보험 소비자 보호를 위해 2천만원 이하의 소액 분쟁 사건에 한해 보험회사 등이 정당한 사유 없이 금감원 분쟁 조정 결정에 불복할 수 없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후보 측은 보험업권을 시작으로 금융권 전반에 이를 적용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 민원인이 중재안 수락하면 재판상 화해 효력…금융사는 소송 못해
편면적 구속력은 금감원의 분쟁조정안을 민원인이 수락하면 금융사의 수락 여부와 관계없이 조정안에 '재판상 화해'의 효력을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금융회사는 소송을 제기할 수 없으며 무조건 조정안을 따라야 한다.
현행 금융분쟁조정제도 상에선 금융 소비자와 금융사, 양측 모두가 조정 결정을 수락해야만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발생한다. 한쪽이 수락하지 않으면 소송으로 이어져 상대적 약자인 금융 소비자의 피해가 가중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윤석헌 전임 금융감독원장이 편면적 구속력의 법제화를 추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소비자 보호 측면에선 이해가 되지만 헌법에서 보장하는 재판상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 맞느냐 하는 의문도 있다"며 사실상 반대했다.
업계에서도 헌법상 인정되는 금융회사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며 반발했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20일 이 후보 공약과 관련해 "다시 사회적 화두가 던져졌으니까 금융위원회와 같이 논의해 필요하면 제도적 개선을 검토하겠다"면서도 "그동안 많은 논의를 거쳐 만들어진 데 대해 아무런 추가 논의 없이 어떤 결론을 말씀드리기는 좀 어렵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 "소송액 제한하면 재판청구권 침해하지 않아"
소비자 단체와 학계 등에선 편면적 구속력 도입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최병규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융감독원 분쟁조정 결정과 편면적 구속력 인정에 대한 연구' 논문에서 "금융회사는 강자이고 지적 능력이나 경제적 능력에서 일반소비자를 압도한다"며 "전문가가 아닌 일반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법제화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분쟁조정 결과에 대한 편면적 구속력 인정이 부족하다"며 "일정한 제한된 범위를 두면서 분쟁조정 결정을 일반 소비자가 수용할 경우 편면적 구속력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2천만원 이하 소액으로 한정할 경우에는 헌법에 보장된 재판청구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금융소비자단체의 한 관계자는 "개인의 경우 소송액이 2천만원 이하이면 실익이 크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리는 소송을 하지 않거나 포기하는 사례가 많지만, 금융회사는 소송을 전담하는 조직이 있어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금융회사와 개인 소비자의 이런 대응력 차이를 고려할 때 편면적 구속력이 적용되는 소송액을 제한한다면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법조계의 견해도 있다"고 전했다.
◇ "제도 악용 블랙 컨슈머 등 부작용 우려"
금융회사들은 편면적 구속력에 대해 소비자 보호라는 측면에서는 이해한다면서도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회사가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의 중재안을 거절할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해 중재안이 나온 사례와 비슷한 경우를 찾아 배상을 요구하는 블랙 컨슈머(악성 소비자)가 속출할 수 있다고 금융회사 관계자들은 말했다.
또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의 중재안과 법원의 판단이 다를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과거 조정위원회의 중재안과 법원의 판단이 달랐던 사건이 있었다.
금융회사는 이런 때를 대비해 법원의 판단을 받을 수 있는 권리와 기회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회사의 한 관계자는 "비슷한 케이스에 대한 조정위원회의 결정이 당시 금융당국 정책 성향 등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viva5@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