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 무차별 총격…시민군·소수민족, 연대 무장투쟁
유엔은 유명무실·아세안은 분열…원유·가스전 거대 기업 '엑소더스' 주목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미얀마 쿠데타가 1일로 1년을 맞았다.
지난해 2월 1일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이끄는 미얀마 군부는 2020년 11월 총선이 부정선거였다고 주장하면서, 총과 탱크로 정권을 찬탈했다.
군부의 총구 앞에 1천500명이 넘는 국민이 쓰러졌다.
미얀마 국민은 호락호락 굴복하지 않았다. 거리 시위와 시민불복종에 이어 무장 투쟁으로 저항의 강도를 높였다.
반면 국제사회는 무기력했다. 유엔은 중국·러시아의 '몽니'에 속수무책이었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이 늦게나마 압박 움직임을 보였지만 군부에 우호적인 의장국 캄보디아의 어깃장으로 분열상을 보였다.
군정은 국제사회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반군부 진영도 무장투쟁을 최우선 전략으로 꼽는다.
양측간 충돌은 더 격화할 전망이어서 해법은 요원해 보인다.
이런 가운데 군부의 '최대 돈줄'인 원유·가스전 운영에 참여한 거대 해외 에너지 기업 3곳이 최근 철수를 전격 선언하면서 자금의 군부 유입을 막을 '표적 제재' 발동 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 국민에 무차별 '총질'…사망자 1천500명 넘었다
쿠데타 1년간 미얀마 국민의 피가 곳곳에 뿌려졌다.
시위 도중 머리에 총을 맞은 20대 여성이 쿠데타 19일 만에 숨져 첫 희생자가 된 뒤 무자비한 총격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희생자가 속출했다.
지난해 12월 말에는 동부 카야주에서 아동 4명 등 민간인 최소 35명이 불에 탄 시신으로 발견돼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인권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지난달 31일까지 군부 폭력으로 숨진 이는 1천503명으로 집계된다. 체포·구금자는 1만1천800여명에 달한다.
국민의 삶도 악화일로다.
놀린 헤이저 유엔 미얀마 특사는 지난달 31일 유엔 본부 화상 회의에서 5천400만 인구의 거의 절반가량이 빈곤 속에서 살고, 1천440만명 이상이 인도주의적 지원이 필요한 상태로 추산된다고 지적했다.
군부의 폭력은 국민을 국내외로 내쫓았다.
유엔에 따르면 쿠데타 이후 미얀마 내에서 피란길에 오른 국민이 지난해 말 32만명에서 최근 40만명까지 늘었다.
또 지난달 13일 기준으로 4천700명 이상이 태국 국경을 넘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전했다.
◇ 수치 100년형 목전?…문민정부 인사 제거해 장기집권 획책
군정은 문민정부 인사들의 '정치적 제거'에도 주력했다.
쿠데타 당일 가택 연금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은 징역 6년형이 선고됐다.
14일부터는 군부가 쿠데타 명분으로 내세운 선거 부정과 관련한 선거법 위반 재판도 시작된다.
최장 징역 15년형이 가능한 부패 혐의도 여러 건 남아있어 징역 100년 이상이 선고될 수도 있다.
수치 고문이 이끌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체포된 의원 649명 중 4분의 3인 약 490명이 여전히 구금 중이라고 밝혔다.
정치인 구금은 2023년 총선을 치르기 전 NLD를 해산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장기집권을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 1년 동안 무릎 안 꿇은 국민…투쟁 강도 점차 세져
유혈 탄압에도 미얀마 국민은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평화 시위와 SNS를 통한 군부 만행 고발은 시민불복종 운동(CDM)을 거쳐 시민방위군(PDF)의 무장 투쟁으로 이어졌다.
주류 버마족이 대다수인 PDF는 독립 이후 처음으로 국경 소수민족 무장조직들과 연대했다.
민주진영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는 지난해 12월부터 한 달간 PDF와 소수민족 무장단체 공격으로 2천380명의 미얀마군이 사망하고 600명가량이 부상했다고 발표했다.
강력한 저항에 흘라잉 사령관은 지난해 6월 홍콩TV와 인터뷰에서 "저항이 이 정도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무장 투쟁에 군부는 포는 물론 항공기를 이용한 공습으로 반격하고 있다.
국제분쟁 전문연구기관인 국제위기그룹(ICG)의 선임 연구원인 리처드 호시는 연합뉴스에 "흘라잉 사령관 등 군 장성들은 기대했던 권력의 보상을 누리는 대신 커져만 가는 위기에 갇혀 있다"며 "정권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중·러만 찾는 군정…유엔은 무기력, 아세안은 분열
군부는 지난 1년간 국제사회 경고에는 귀를 닫았다. 대신 중국과 러시아로 더욱 기울었다.
쿠데타를 내정 문제로 규정한 중국은 꾸준히 군부와 접점을 이어갔다.
흘라잉 사령관은 쿠데타 4개월 만에 러시아를 직접 찾기도 했다.
중국·러시아와 밀착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효과를 거뒀다. 군정 제재 방안은 상임이사국인 이들의 반대로 안보리를 통과하지 못했다.
아세안은 지난해 4월 특별정상회의에서 쿠데타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도출한 5개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10월 정상회의에 흘라잉 사령관 참석을 불허했다.
그러나 차기 의장국인 캄보디아가 제동을 걸었다. 훈센 캄보디아 총리는 이달 초 미얀마를 찾아 흘라잉 사령관도 만났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가 반발하자 캄보디아가 한발 물러난듯한 모양새지만 16∼17일 아세안 외교장관 리트리트(비공식 자유토론)에서 향방을 가늠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양희 전 유엔 미얀마 인권특별보고관은 인터뷰에서 "지난 1년간 국제사회는 미얀마 사태에 소극적이었다. 그중에서도 유엔, 특히 안보리는 직무유기 수준"이라며 "아세안 역시 예상은 했지만 이빨 빠진 호랑이와 같았다"고 혹평했다.
국제사회는 쿠데타 1년을 맞아 잇따라 성명을 내고 군정을 상대로 폭력 중단과 함께 이해 당사자들과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그렇지만 이런 변화를 끌어낼 지렛대가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 올해도 충돌 격화 불 보듯…군부 돈줄 차단 '표적 제재' 가능?
군정과 민주진영간 '강 대 강' 대치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서방국가 발 제재가 사실상 아무 충격을 주지 못한 만큼, 군정은 밖으로는 중·러 의존에, 안으로는 반군부 진영 탄압에 더 집중할 걸로 보인다.
조 민 툰 군정 대변인은 최근 브리핑에서 국제사회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민주 진영은 국제사회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무장 투쟁에 더 힘을 쏟겠다는 입장이다.
두와 라시 라 대통령 대행은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4개 부문에 투쟁을 집중하고 있다면서 첫 번째로 '무력 투쟁'을 꼽았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필 로버트슨 아시아 담당 부국장은 "양측간 더 큰 충돌이 발생하고 이 과정에서 국민 고통이 더 가중되고 더 많은 난민이 발생할 게 분명하다"고 전망했다.
이어 "이를 막기 위해 무기 금수와 원유·가스전 수익금에 대한 제재를 시행할지는 국제사회에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군부와 합작사업 중단을 요구받아온 프랑스와 미국의 거대 에너지 기업인 토탈과 셰브런이 지난달 21일 가스전 사업 철수를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일주일도 채 안 돼 호주 에너지 기업인 우드사이드도 이에 동참했다.
HRW는 최대 돈줄인 가스·원유전 수익금이 군부로 흘러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표적 제재를 발동할 것을 프랑스와 미국 정부에 촉구했다.
HRW에 따르면 국영 미얀마석유가스회사(MOGE)가 가스전 사업 수익금으로 받는 돈은 연간 약 10억 달러(약 1조2천억원)로 가장 큰 외화 수입원이다.
표적 제재가 국제사회가 군정에 첫 타격을 입히는 사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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