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살된 대통령이 생전 약속한 정권이양 시점 도래
미국은 '정부·야당 협력해야'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대통령 암살 이후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아이티에서 야권이 미국에 현 정부에 대한 지원 중단을 요구하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몬태나 어코드'라고 불리는 야권 연합은 최근 미국에 대통령 권한 대행인 아리엘 앙리 총리가 이끄는 현 정부에 대한 지원을 철회할 것을 요청했다.
야권 연합은 현 정부는 대선이 차일피일 미뤄짐으로 인해 정당성을 잃었고, 특히 앙리 총리가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의 암살에 연루돼 있어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미국 정부에 이같은 요구를 하면서 시한을 7일로 설정했다. 이날은 모이즈 대통령이 작년 암살되기 전 자신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겠다고 약속한 날이다.
야권은 7일부로 현 정권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이티 야권의 승부수로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에 부닥치게 됐다고 NYT는 분석했다.
그동안 미국 정부는 아이티가 더 큰 혼란으로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현 상태를 유지하는 데 주력했다. 현 정부가 10여년간 아이티를 통치하는 동안 갱단의 힘이 부쩍 커졌고 부패도 만연했지만 현상 유지가 우선이었다.
브라이언 니콜스 국무부 서반구 담당 차관보는 지난달 "아이티 역사를 보면 국제사회는 늘 아이티 정치에 개입하고 승자와 패자를 결정해 왔다"며 "미국 정부의 목표는 그런 일을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앙리 총리가 이끄는 정부가 올해 대선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고 갱단도 이같은 사회혼란을 틈타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4일에는 갱단이 공항을 습격해 업무를 마비시키기도 했는데, 7일 이후에는 혼란이 더 극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야권은 아이티 정부에 선거 전까지 야권 지도자인 프리츠 알폰소 장을 대표로 하는 과도정부를 구성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장은 인터뷰에서 "현재 아이티에선 납치와 성폭행이 만연해 있고 혼란이 극심한데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야권이 이끄는 과도정부도 헌법에 위배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은 야권이 더욱 넓은 지지를 받고 있기에 현 정부보다는 정당성을 더 확보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정부 고위층은 몬태나 어코드에 현 정부와의 협력을 촉구한 바 있다. 미국은 아이티 야권이 아이티가 대선을 거쳐 정상화되는 데 중요한 파트너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앙리 총리는 과도정부 수립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정부는 선거를 통해 구성돼야 한다"고 맞서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 암살범들과 모종의 관계를 갖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작년 9월 아이티 검찰은 앙리 총리가 대통령 피살 전후 핵심 용의자들과 접촉한 사실이 있다고 밝히고 법무부에 그를 기소할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앙리 총리는 기소 위기에 놓이자 담당 검사를 해임하며 버티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금까지는 앙리 총리에 대해 제기되는 이같은 비난을 외면하면서 정부와 야권이 절충안을 내도록 촉구해 왔다.
하지만 정부의 한 관계자는 최근 NYT와 인터뷰에서 "미국은 앙리 총리를 관리인 정도로 보고 있으며, 그에 대해 무조건적인 지원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미국이 언제까지 앙리 총리 편만 들지는 않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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