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에 발언 부인…NYT "우크라·서방, 수용 어려울 것"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전운을 걷어내기 위해 주요국 정상들이 숨 가쁜 외교적 노력을 하는 가운데 사태를 풀기 위한 해법으로 냉전 시대 용어인 '핀란드화'(Finlandization)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미국 언론 뉴욕타임스(NYT)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7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를 '핀란드화'하는 것이 긴장 해소 방안 중 하나로 검토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핀란드화란 서방과 소련 간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에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가 소련의 대외정책을 추종한 사례를 가리키는 용어다.
1948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엄격한 중립을 표방한 핀란드는 다른 동유럽 국가들처럼 소련의 침략을 받지는 않았으나 그 대신 러시아가 자국의 내정과 외교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허용해야 했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이 갑자기 소환한 핀란드화는 하루 만에 철회됐다.
푸틴 대통령과 회동 직후인 8일 우크라이나로 날아간 마크롱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과 만나서는 이와 같은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한 것이다.
그러나 마크롱의 발뺌에도 불구하고 핀란드화는 이미 우크라이나 위기를 풀 해법으로 외교가에서 논의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소련의 일원이었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영향력을 거부한 채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점점 더 서방에 기울고 있고, 서방의 집단 안보체제인 나토에 가입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나토의 동진에 민감한 러시아로서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등 옛 소련 국가들의 나토 가입을 배제하고 인근 국가에 공격 무기를 배치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담은 안전보장 협정을 최근 미국과 나토 측에 요구하고, 우크라 접경 지대에 13만명에 이르는 병력을 배치해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NYT는 이런 상황에서 핀란드화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가능성을 차단하는 카드가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는 또한 우크라이나의 국내외 정책에 러시아가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어 미국은 물론 우크라이나나 나토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양보일 수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싱크탱크 대서양위원회의 안나 비슬란더 대서양국장은 "이 모든 것이 우크라이나가 열망해 온 것과는 어긋나는 것"이라며 "(핀란드화는) 나토와 유럽연합(EU)에 가입하려는 장기적인 정치적 목표에서 크게 선회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국제문제연구소(채텀하우스)의 리처드 휘트먼 연구원도 마크롱 대통령이 꺼낸 방안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결정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각 나라는 자국의 동맹을 자유롭게 선택해야 한다고 이야기해 온 바 있다.
한편, 앞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침공해 국제 질서가 요동치던 2014년 사태의 해결 방안 중 하나로 핀란드화를 제안한 바 있다.
키신저 장관은 당시 언론 기고문에서 "우크라이나가 살아남으려면 어느 쪽에 붙어서 상대를 향한 교두보가 되기보다는 양측을 연결하는 다리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확실한 독립국가로서 서방과 협력하지만 러시아에 대한 적대 관계는 조심스럽게 피하고 있는 핀란드를 본뜨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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