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대 러시아 내정간섭 받았던 과거 연상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전운이 감도는 우크라이나 해법으로 프랑스 대통령이 냉전 시대 용어인 '핀란드화'(Finlandization)를 꺼내들면서 정작 핀란드 내부에서는 아픈 역사를 건드렸다는 반발이 나온다.
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 7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모스크바로 가는 길에서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 가능성을 묻는 현장 기자의 질문에 "고려되는 선택지 중 하나"라고 인정하며 비판이 일었다.
그러다 우크라이나의 반발을 의식해서인지 다음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나서는 이를 부인했다.
핀란드화란 서방과 소련 간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에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가 소련의 대외정책을 추종한 사례를 가리키는 용어다.
1948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엄격한 중립을 표방한 핀란드는 다른 동유럽 국가들처럼 소련의 침략을 받지는 않았으나 그 대신 러시아가 자국의 내정과 외교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허용해야 했다.
냉전이 막을 내리면서 핀란드화는 더는 사용되지 않는 구시대적 용어가 됐고 더 나아가 핀란드를 모욕하는 용어로 간주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핀란드에서 핀란드화 언급은 금기시돼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핀란드화를 해결책으로 꺼내는 것이 비판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차단하는 데다 우크라이나의 국내외 정책에 대한 러시아 영향력을 서방이 용인하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핀란드에서는 과거 주권이 침해당했던 역사를 상기하며 씁쓸해하는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60대 남성은 핀란드화라는 단어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상황에 대해 "실소가 나온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가 주변 국가에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상황을 가리켜 "같은 일이 계속 일어난다"며 "조금 두렵다"고 말했다.
그 배경에는 현재 청렴한 복지국가로 칭송받는 북유럽 핀란드가 과거 100여년간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던 역사가 있다.
지난 1150년부터 1809년까지 약 700년간 스웨덴의 지배를 받은 뒤 러시아 내 대공국이 됐다가 1917년 독립했다. 이후 1939년에는 소련의 침공을 받아 영토 11%를 빼앗겼다.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 껴있는 핀란드는 국민 정서가 친서구 성향에 가깝다.
부모가 각각 러시아인, 핀란드인이라는 40대 여성은 어머니가 여전히 러시아에 관한 한 정치 이야기는 꺼린다고 했다.
미카 알톨라 핀란드국제문제연구소(FIIA) 소장은 핀란드화에 대해 "핀란드인들한테는 나쁘게 들린다"며 "핀란드 역사에서 어려웠던 시기와 관련있다"고 말했다.
알톨라 소장은 우크라이나가 핀란드화되면 핀란드도 안전하지 않다고 우려했다. 그는 "핀란드인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일이 거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고 전했다.
핀란드의 나토 가입 논쟁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핀란드비즈니스정책포럼(EVA)을 운영하는 에밀리아 쿨라스는 핀란드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이 부상한 것을 계기로 나토 가입에 대한 논의가 예전보다 더 공개적인 경향을 띠었다고 전했다.
중립국을 표방하는 핀란드는 나토 회원국은 아니지만 연합 군사훈련이나 정보공유 등에 걸쳐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한 이후 협력을 강화했다.
그러나 나토 가입과 관련해서는 러시아를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도록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난달 핀란드가 현재로서는 나토 가입 계획이 없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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