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노역 직시한 독일]"역사 외면 日세계유산 등재 우린 안돼"

입력 2022-02-11 14:30   수정 2022-02-11 14:59

[강제노역 직시한 독일]"역사 외면 日세계유산 등재 우린 안돼"
람멜스베르크 광산 박물관 부관장 "특정시기 뺀 일본식 접근법 안돼"
나치 강제노역 현장 고스란히 보존해 세계문화유산 등재

(고슬라[독일]=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한국 기자가 직접 온 것은 처음인 것 같네요"
8일(현지시간) 만난 독일 람멜스베르크 광산 박물관의 요한네스 그로세빙켈만 부관장은 한국 기자의 첫 인터뷰 요청을 받고서 일본 사도광산 관련 보도를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봤다고 한다.
이 광산은 1천년 채굴의 역사를 지녀 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하지만 일본과 달리 2차 세계대전 무렵 독일 나치 정권의 강제 노역의 현장과 사료를 그대로 보존해 역사적 가치의 '완결성'과 '온전성'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곳이다.
이런 조건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문화 유적이 갖춘 공통된 특징이다.
이런 역사 현장을 관리하는 책임자인 만큼 그로세빙켈만 부관장은 일본이 일으킨 사도광산 논쟁에 대해서도 세밀한 내용까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람멜스베르크 광산과 차이점을 묻자 "일본과 같이 강제 노역을 외면하고 특정 시기에 한정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리려는 접근은 있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지적했다.
이어 "2차 세계대전 당시 람멜스베르크 광산에서 유럽의 나치 점령지에서 끌려온 노동자의 강제노역이 이뤄졌던 증거는 명백하고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의 역사 중 일제강점기의 조선인 강제노동 사실을 빼고 에도시대(1603∼1867년)로 한정해 유네스코에 추천했다.


그는 "독일의 시각에선 (광산의 역사에서) 특정 집단이나 19∼20세기 등 특정 시기를 빼놓거나 외면하는 것은 불가능한 접근법"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그런 접근법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리겠다는 접근은 원래부터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라며 강제노역을 외면해버린 일본의 사도광산 추천을 비판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람멜스베르크 광산에서 강제노역이 이뤄졌던 증거가 남아있느냐고 묻자 "명백하다"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그는 "강제노역 사실 자체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2차 세계대전 시기 대부분 기업에서 강제노역이 이뤄졌는데 다들 이는 인정하면서도 그 시기나 기업에 따라 이를 평가하고 책임을 지는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에서도 전쟁 직후였던 1950년대에는 특정시기를 제외하거나 특정시기에 한정해 광산에 대한 역사를 서술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그로세빙켈만 부관장은 "하지만 이후 독일에선 역사를 직시하고 소화하는 과정을 통해 '기억의 문화'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를 대하는 이런 태도는 (독일인이) 자랑스러워해도 될 것 같다"면서도 "물론 독일의 어깨에는 600만명의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이라는 믿을 수 없는 역사적 책임이 여전히 남았다"고 강조했다.
역사를 직시해야 하는 이유를 묻는 말엔 "역사적 사실들을 모으는 것은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며 "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저런 짓을 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저런 일이 발생하는지 이해하려면 계속 스스로 되물어야 한다"고 답했다.
그로세빙켈만 부관장은 지난해 10월 동료 역사학자, 고고학자들과 함께 람멜스베르그 광산에서 나치 통시 기간 이뤄진 강제노역에 대한 정밀조사에 착수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지 30년이나 지났지만 이 광산에서 이뤄진 강제노역에 대해 박물관에 상설전시로 구술자료들이 있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해서다.
박물관은 조사가 끝나면 해당 내용을 상설전시에 추가할 예정이다. 연구팀은 광산 운영업체의 강제노역 관리 서류를 분석하고 1960년 철거됐던 강제 노역자 임시수용소 터에 남은 유물들도 일반 시민도 참여하도록 해 발굴할 계획이다.
yulsi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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