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놀룰루=연합뉴스) 김경희 특파원 = '반나절 vs 사흘'.
12일(이하 현지시간)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을 위해 정의용 외교부 장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상이 각각 하와이에 머문 시간이다.
정 장관은 회담을 위해 11일 하와이에 도착, 다음날 연쇄 회담을 마친 뒤 13일 귀국길에 올랐다. 정확히 사흘간 미국 체류를 마친 뒤다.
반면 정작 이번 회담의 주최국이자 초청자인 블링컨 국무장관은 9일부터 호주에서 열린 쿼드(Quad·미국·인도·호주·일본) 외교장관 회담에 참석한 뒤 피지 방문을 마치고 회담 당일인 12일에야 호놀룰루에 발을 들였다.
블링컨 장관은 회담 일정을 마무리한 뒤엔 당일 곧바로 본토로 이동했다.
하야시 외무상 역시 회담일에 맞춰 하와이에 도착했고 일정 종료 후 곧바로 일본으로 돌아갔다.
정 장관이 하와이에 머무는 동안 회담 이외 특별한 외부 일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어찌 보면 뚜렷한 볼 일도 없이 사실상 초청자는 도착도 하지 않았는데 미국땅에 먼저 발을 들여 하루 넘게 대기하다 회담에 나서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한국 국민 입장으로선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북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이지만 우리가 굳이 저자세를 취할 상황도 아니다. 외교부 역시 이 같은 메시지를 염두에 둔 것은 당연히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이 같은 일정 차는 왜 발생했을까. 웃지 못하게도 순전히 항공편 때문이다.
미 국무장관은 통상 이동에 전용기를 사용한다. 당연히 본인이 필요한 시점에 언제든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
일본 외무상은 이번 일정에 전세기를 이용했다고 한다. 역시 움직임에 아무 제약이 없다.
반면 정 장관은 출장을 위해 국적기 대한항공을 이용했다. 기존 항공 노선에 맞춰 출장 일정을 잡다 보니 불가피하게 일찍 입국해 하루를 더 체류하다 귀국하는 일정 차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회담 실무를 준비해 온 한 외교관은 "솔직히 우리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손님이 먼저 와서 기다리다 회의에 참석하는 상황이 답답하다"며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겠지만 결국 국민 정서와 여론이 무서워서 엄두를 못 내는 것 아니겠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이 신형 공군 1호기를 이용해 중동 3개국 순방에 나섰다고 한다. 11년간 사용하며 낡은 전용기를 임기 말에야 교체한 셈이다.역대 대통령 재임 시마다 전용기 구입 문제는 늘 화두였고 늘 이뤄지지 못했다.
'전용기'에 따라붙는 부정적 인식이 부담스럽고 철마다 바뀌는 야당의 반대가 한결같았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에서는 아예 일찌감치 전용기 구입 계획이 없다고 선을 긋기까지 했다.
대통령 전용기마저 임대하는 상황에서 국무총리와 장관들의 사정은 말해 무엇할까 싶다.
다만 때로는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기도 한다. 속된 말로 '기선제압'이 필요하기도 하고, 체면을 차려야 하는 상황도 있다. 나라의 체면은 다른 말로 '국격'이다.
kyung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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