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등 자국민 철수령…'러 대사관까지 철수' 보도도
러 "서방이 긴장 조성" 반발…일촉즉발 위기에 금융시장 휘청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전명훈 기자 =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자국민에게 재차 '대피령'을 내렸다.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관 직원까지 그 대상이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도 안심할 수 없다는 미국의 거듭된 경보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가 오히려 서방에서 긴장을 조성한다며 반발하는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12일(현지시간) 전화 통화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미 "러시아 공습 언제든 가능"…각국, 속속 자국민 철수령
11일 AP, AFP,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러시아의 공습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며 자국민에게 48시간 내 철수를 권고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지금이라도 시작할 수 있으며, 푸틴 대통령이 이달 20일 베이징올림픽이 끝나기 전에도 우크라이나 침공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이 동맹국들에 러시아의 침공일을 2월 16일로로 못박아 제시했다는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 티코의 보도도 나왔다.
러시아는 베이징 하계올림픽 개막일이던 2008년 8월 8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등을 놓고 갈등을 빚던 조지아를 상대로 대규모 군사작전을 개시, 올림픽 기간엔 휴전한다는 불문율을 무색하게 하고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전례가 있다.
미국의 외교 실무 책임자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이날 남태평양 국가 피지를 공식 방문한 자리에서 "푸틴 대통령이 결심을 했는지 모르지만 급작스럽게 행동에 옮길 역량을 완비해두고 있다"고 진단했다.
AP통신은 미 정부가 우크라이나 대사관 직원들에게도 대피령을 내릴 예정이라고 이날 보도했다.
취재진의 관련 질문에 블링컨 장관은 조만간 구체적인 정부의 발표가 있을 예정이라며 사실상 보도 내용을 확인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도 자국민 철수를 당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군을 우크라이나로 파견할 계획인지 묻자 "그럴 계획은 없다. 미군과 러시아군이 서로 총을 쏘기 시작하면 세계대전이 된다"며 극도의 경계감을 표출했다.
갈수록 위기가 고조되자 한국, 일본, 영국, 호주, 네덜란드, 라트비아, 뉴질랜드 정부도 우크라이나에 머무는 자국민들에게 철수를 속속 권고했다.
이스라엘은 대사관 직원들을 대피시키고 있다.
한국 외교부는 13일 오전 0시(현지시간 12일 오후 5시)부터 우크라이나 전 지역에 대해 여행경보 4단계(여행금지)를 긴급 발령한다. 이에 따라 현지에 체류 중인 한국인은 즉시 철수해야 한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주재 러시아 대사관 직원들이 현지를 떠나기 시작했다는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 보도까지 나왔다. 러시아 대사관은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반면 러시아와 외교적으로 친밀한 중국은 자국민에 대한 대피 명령을 내리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주재 중국대사관은 이날 고지에서 "우크라이나 정세 변화를 세심하게 주시하면서 예방 의식을 강화해야 한다"고만 당부했다.
◇ 미, 대비태세 강화…최정예병력 3천명 폴란드 추가 파병
미국은 최정예부대인 82공수사단의 병력 3천명을 추가로 폴란드에 파견하기로 했다. 지난 2일 배치된 82공수사단 병력 1천700명을 더하면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폴란드에 4천700명을 추가 배치하는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와 별개로 지난달 말에 미군 병력 8천500명에 동유럽 배치 준비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미 유럽에는 미군 8만명이 주둔하거나 순환 배치 중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밤새 외교안보 보좌관들과 만나 긴박하게 돌아가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는 회의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 미 관료들은 러시아의 발언이 강경해지고 있는데다 러시아 군함 6척이 흑해에 도착하고, 러시아 군사장비들이 벨라루스에 배치되고 있는 것에 비춰 위기가 임계점에 도달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부 장관과 전화 통화를 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강력한' 지원을 약속했다.
블링컨 장관은 우크라이나 주권과 영토 보전에 대한 지속적이고 변함없는 지지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국무부는 밝혔다.
◇ 서방, 러시아에 제재 경고…'심각한 비용' 으름장
미국 등 서방은 파국을 막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병행하는 동시에 러시아를 향한 제재를 경고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루마니아 국가 지도자와 유럽이사회, 유럽위원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수장 등 유럽 정상들과 전화 통화를 했다.
이들 정상은 러시아의 군사력 증강에 우려를 제기하고 외교적 해결책을 원한다는 뜻을 표명했다고 백악관은 전했다.
또 러시아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협력하는 한편, 러시아가 군사력 증강을 택할 경우 러시아를 상대로 '엄청난 결과와 심각한 경제적 비용'을 부과할 준비를 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피지에서 러시아에 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하면서 "푸틴 대통령이 군사 행동에 나서기로 한다면 전세계 동맹국, 파트나들과 협력해 신속하게 무거운 경제 제재를 부과하고, 우크라이나의 방위력을 강화해 나토 동부(동유럽) 동맹을 강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러시아에 대한 EU의 제재는 금융과 에너지 분야를 대상으로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집행위원회(EC)는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있으며, 제재는 첨단기술 제품 수출뿐만 아니라 금융·에너지 부문에 관련된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 러시아 "서방이 위기 조장"…침공 임박설 재차 반박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의도가 없다고 거듭 이야기해 온 러시아는 서방 국가들이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며 침공 임박설을 재차 반박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서방 국가들이 언론을 활용해 자신들의 공격적인 행동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해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외무부는 또 12월 나토에 보낸 안전보장 요구에 대한 답변과 관련, 각국의 개별 답변을 원한다며 집단 대응은 외교적 무례의 표시라고 비판했다.
◇ 실마리 못찾는 외교전…바이든·푸틴, 12일 전화 담판
이번주 유럽 당국자들이 러시아를 설득하기 위해 잇따라 모스크바를 찾았지만 러시아가 뜻을 굽히지 않으며 위기 해소의 실마리가 좀처럼 마련되지 않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7일 모스크바에서 푸틴 대통령과 회담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나토의 동진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부 장관도 10일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과 만났지만, 서로 기존 입장만 확인한 채 돌아섰다.
10일 독일 베를린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프랑스, 독일 4자 회담도 열렸지만, 돌파구를 마련하지는 못했다.
이런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12일 전화 통화를 하기로 해 주목된다. 양국 정상은 당초 오는 14일 통화를 하기로 했으나 미국 측의 요청에 따라 통화 시점을 앞당기기로 했다고 러시아 정부 관계자가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통령 별장인 메릴랜드 캠프 데이비드에 머물며 현지 시간으로 이날 정오 이전에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할 예정이다.
두 정상은 우크라이나 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한 작년 12월 30일 50분간 통화한 바 있다.
지난번 통화는 미·러 고위급 인사들의 제네바 회동을 앞두고 의중 탐색전이었다면, 이번 통화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싸고 서방과 러시아의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이뤄지는 두번째 담판인 셈이다.
정상간 통화와 별도로 블링컨 장관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과 각국 외교 장관간 통화를 한다.
블링컨 장관은 라브로프 장관에게 "나토 국가들의 단결과 결의를 강조할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이날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를 앞두고 있다.
◇ 짙어진 전운에 금융시장 '휘청'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임박했다는 공포에 글로벌 금융시장은 휘청했다. 이날 뉴욕증시의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1.43%,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1.90%, 나스닥 지수는 2.78% 급락 마감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시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글로벌 원유 공급이 감소할 것이라는 관측에 국제유가는 가파르게 상승했고, 안전자산인 금값 역시 상승세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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