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올림픽 기간 순방 '맞불'…바이든표 인도태평양 전략도 공개
한미일, 5년만의 공동성명서 공조범위 확대…한국 역할확대 기대 담긴듯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13일(현지시간) 일주일간의 인도태평양 지역 순방을 끝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로 외교적 초점이 온통 유럽에 쏠린 상황에서도 지난 7일 호주행에 오른 뒤 남태평양 섬나라 피지에 이어 하와이 방문 일정까지 마무리한 것이다.
이번 순방은 우크라이나 사태 와중에도 미국이 최우선 외교 과제인 중국 견제를 강화하고 인도태평양에서 영향력 확대를 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공교롭게도 중국에서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리던 기간이기도 했다.
특히 마지막날 일정인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에서는 3국 협력 범위가 종래 북한 대응을 넘어서 국제사회의 각종 현안으로까지 확대됐음을 확인해 대중국 전선에서 한국의 동참 주문이 늘어날 것임을 예고했다.
첫 방문지 호주 일정의 핵심은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대중국 견제협의체로 알려진 쿼드(Quad) 외교장관 회담이었다. 쿼드 외교장관 회담은 화상 회의까지 포함해 이번이 4번째였다.
특히 조 바이든 행정부는 작년 3월 화상으로 첫 정상회의를 열며 쿼드를 정상급 회의체로 격상했는데, 이번 회담에서는 올 상반기 일본의 정상회의 개최 입장도 재확인됐다.
쿼드 성명에선 중국을 직접 거명하진 않았지만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강압이 없는 지역" 등 중국을 견제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 다수 담겼다.
미국은 블링컨 장관의 순방 기간에 맞춰 지난 11일 인도태평양 전략 문건을 공개했다.
문건은 "중국의 강압과 공격성은 전 세계에 걸쳐 있지만 인도태평양에서 가장 극심하다"며 정치, 경제, 안보 등 전방위로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또 쿼드에 대해 "최고의 역내 집단으로 강화할 것"이라며 역할과 위상 확대 의지를 담았다.
블링컨 장관은 12일 피지를 방문한 자리에선 남태평양 17개 섬나라 국가의 지도자들과 화상 회담을 하고 '솔로몬 제도'에 29년 만에 대사관을 재개설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이 현지 엘리트 정치인과 사업가에게 공격적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미국이 우호적 관계를 잃을 위험에 처했다는 게 국무부가 밝힌 설명이었다.
국무장관의 피지 방문은 1985년 이후 처음이었다.
블링컨 장관 순방의 대미는 12일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이었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긴밀한 동맹으로 여기는 두 국가지만, 독도와 과거사 문제를 놓고 관계가 급랭하자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초부터 양국 관계 복원과 한미일 3자 공조 강화에 큰 공을 들였다.
인도태평양 전략 문건에 한미일 협력 확대가 향후 12∼24개월 이내에 추진할 10대 핵심 과제에 포함됐을 정도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번 회담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할 만하다.
비록 과거사를 놓고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긴 했지만 작년 11월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 취임 이후 처음으로 한일 양자 회담이 하와이에 열린 게 대표적이다.
2017년 2월 이후 5년 만에 한미일 외교장관의 공동성명이 나왔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특히 과거 한미일 공동성명은 주로 북한 핵문제에 초점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북한 문제가 부분적으로 들어가고 인도태평양과 국제사회 현안에서 3국의 공조 의지를 상당 부분 할애하며 한미일의 협력 범위를 크게 확장했다는 게 특징이다.
블링컨 장관은 3국의 경제 안보 강화를 언급하며 공급망·반도체·핵심광물 협력, 기업의 공정한 경쟁, 항해과 항공의 자유 보장 등을 열거했는데, 모두 중국을 염두에 둔 현안들이다.
블링컨 장관은 "우리(한미일)는 양자가 자연스러웠던 일들을 3자로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3자 협력 강화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필수 불가결한 벤치마크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중 갈등이 갈수록 첨예화하는 상황에서 한미일 공조체제를 대중(對中) 협공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미국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지만, 역으로 중국 견제에서 한국의 역할 확대를 주문한 것으로도 볼 수 있어 한국의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 북한 등 인도태평양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우크라이나 사태로 대응해야 할 외교적 과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지만 미국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보였다.
그는 이번 순방 기간에도 우크라이나 사태 관리 업무를 함께 진행했다고 소개한 뒤 북한이든, 러시아든 규칙에 기초한 질서 훼손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우리는 이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함께 일어서야 한다"며 동맹의 연대 필요성과 미국의 외교적 역량을 강조했다.
AFP통신은 "우크라이나 위기가 블링컨의 아시아 가교놓기 순방에 그림자를 드리웠다"면서도 "한미일은 아시아태평양에서 직면한 안보 위협에 대해 단합을 선언했다"고 평가했다.
jbry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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