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킹메이커'로 다시 나선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

입력 2022-02-15 12:10  

트럼프 '킹메이커'로 다시 나선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
NYT "2016년 대선 트럼프 최대 후원자…강경 보수 지원 재개"
"과격한 세계관에 공화당 지지자들도 우려"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최대 후원자 중 한 명이었던 피터 틸 페이팔 창업자가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운동을 후원하며 다시 킹메이커로 나서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는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틸이 지난달 자신의 마이애미비치 별장에서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리즈 체니 하원의원(와이오밍주·공화당)에게 도전하는 보수 후보를 위한 모금행사를 열었다고 전했다.
체니 의원은 작년 1월 6일 의회폭동 후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 투표에 찬성표를 던진 소위 '반역자 10명' 중 하나다. 틸은 이들 10명 모두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보수파로 교체돼야 한다고 선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 출신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성장한 틸은 1998년 결제서비스 업체 페이팔을 창업했고 페이스북 등에 투자해 수억달러를 벌어들였다. 포브스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26억 달러(3조1천130억원)에 달한다.
2000년대부터 보수적 색채를 드러내며 의회와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들을 후원해온 그는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최대 후원자로 떠오르면서 정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는 2016년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 등장해 자신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게이(gay) 공화당원이라고 선언하고, 이후 트럼프에게 125만 달러(15억원)를 기부했다.
틸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백악관 기업인 행사 등에 참여하며 트럼프와 친밀감을 과시하기도 했으나 2018년 NYT에 "(트럼프 정부의) 업무 수행 방식이 모두 기대에 못 미친다"고 말하는 등 트럼프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고 2020년 대선 때도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올해는 상원과 하원에 도전하는 보수 후보 16명을 후원하며 공화당의 최대 정치자금 후원자 중 하나로 다시 떠오른 것이다. 16명 모두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가 이겼다는 거짓말을 지지하는 후보들이다.
중립적 비영리 연구단체 '오픈시크릿'(OpenSecrets)에 따르면 그는 지금까지 이들에게 2천40만 달러(244억원) 이상을 기부했다.

NYT는 틸의 기부는 트럼프가 옹호하는 음모론에 동조하고 공화당 기득권층, 더 넓게는 미국 정치질서 자체를 전복시키려는 반군을 자처하는 강경파 후보들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공화당 후원자들과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또 이들은 소액 후원자들로부터 수백만 달러를 모금하고 있지만 틸 같은 부자의 기부는 비주류로 간주돼 온 이들의 견해가 주류로 이동하는 속도를 올릴 수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그러나 선거자금과 초당파주의를 연구하는 진보단체 '뉴아메리카'의 리 드루트만 선임연구원은 "선거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직접 공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틸이 후원한 후보들을 보면 그가 가진 이데올로기의 단면을 알 수 있다.
그는 암호처럼 알기 어려운 투자자지만, 기존 제도와 세계화는 실패했고 현재의 이민 정책이 중산층을 약탈하고 있으며 미국 연방기관들은 해체돼야 한다는 세계관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그는 최근 최소 6개의 보수 및 자유지상주의 행사에 참여해 중국 공산당과 거대 기술기업을 비난하고 기후변화 과학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자기 생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기존 기관 내 '극단적 독단주의'가 미국을 후퇴시켰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NYT가 입수한 지난해 10월 스탠퍼드대 연방주의자 협회 만찬 녹취록에 따르면 그는 "'완전히 미친 정부'가 '미친 사회'를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미국은 중대한 조정 국면 직전에 있다"며 "나의 다소 종말론적이지만 다소 희망적인 생각은 우리가 마침내 한계점에 이르렀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수석전략가였던 스티븐 배넌은 "공화당이 의회와 백악관을 장악하는 데 주력해온 전통적인 공화당 기부자들과 달리 틸은 반기득권 브랜드로 공화당의 어젠다를 재편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며 "틸은 나라의 방향을 바꾸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주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플랫폼(메타) 이사직에서 물러날 계획이라고 밝힌 틸은 올가을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의제를 지지할 공화당 후보를 지원하는 활동에 더욱 전념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일부 공화당원 사이에서는 틸이 너무 극단적인 후보들에게 재정지원을 집중할 경우 정치적으로 경선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공화당의 오랜 전략가인 스콧 리드는 "경선 과정에서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가을에 (중간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을 후보로 지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scitec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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