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르포] 우크라 피란민 100만명 맞을 채비…"우린 남 아냐"

입력 2022-02-15 22:34  

[폴란드 르포] 우크라 피란민 100만명 맞을 채비…"우린 남 아냐"
폴란드·우크라이나, 지리적으로 가깝고 역사·혈연으로 연결
폴란드 정부, 각 지자체에 우크라이나 피란민 수용시설 파악 지시


(바르샤바=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제 아버지는 우크라이나인, 어머니는 폴란드인입니다. 우크라이나인과 폴란드인은 남이 아니지요"
1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폴란드 바르샤바로 가는 기차 안에서 만난 폴란드인 야로슬로프 씨에게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나면 어떻게 될 것 같으냐'라고 물으니 망설임없는 답이 바로 돌아왔다.
옆에 있던 우크라이나인 유라씨는 "그렇지, 우크라이나랑 폴란드는 형제지"라고 화답했다.

15일 오전 칼바람이 부는 날씨에 도심으로 출근하는 바르샤바 시민들의 얼굴은 이웃 국가에서 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걱정을 가득 담은 듯 어두웠다.
미국 정부가 '러시아의 침공일'로 지목한 16일을 하루 앞둔 'D-1일'의 긴장감이 그대로 전해졌다.
출근하던 음식점 종업원 피터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을 묻자 "50 대 50"이라고 답했다.
그는 "언론에서는 패닉을 부각하지만 우크라이나 친구들 반응을 보면 오히려 차분한 편이다. 어차피 모 아니면 도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날 폴란드 최대 일간지인 가제타 비보르차는 1면에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한 상황을 전하면서 우크라이나가 '패닉' 상황이지만 도움의 손길은 없다고 비판했다.
다른 유력 일간지 제츠폴리타는 폴란드의 난민 맞이 채비 상황을 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이 16일에 이뤄지나'라는 머리기사를 실은 신문도 있었다.
러시아의 침공은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 폴란드엔 현실이다.
미국은 전날 폴란드에 F-15 전투기 8대를 추가로 파견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현실화에 대비해 미국은 폴란드, 루마니아, 독일에 있는 병력 6천명을 재배치해 폴란드에 4천700명을 보내기로 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나면 폴란드가 미군의 '전진기지'가 되는 셈이어서 자칫 폴란드도 표적이 될 수도 있는 처지다.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경고가 나오면서 우크라이나와 가장 길게 국경을 맞댄 폴란드에서는 우크라이나에서 피란민이 폴란드로 대거 유입될 가능성에 대해 대비가 한창이다.
마우리츠 카민스키 폴란드 내무장관은 트위터 계정에 올린 글에서 "우크라이나 상황에 우리는 여러 시나리오를 대비하고 있다. 이는 폴란드 각 지역 주지사와 시장은 우크라이나에서 유입될 피란민이 대피할 곳을 찾는 업무를 포함한다"고 밝혔다.
폴란드 정부는 지난 9일 전국 주지사와 시장 등 자치단체장에게 48시간 이내에 피란민 수용이 가능한 비상 대피용 숙소를 파악하라고 요청했다.
이에 더해 비상시 피란민을 받을 수 있는 기숙사, 콘도, 유스호스텔, 호텔 등 숙박시설과 컨벤션센터 등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폴란드는 유입될 수 있는 피란민이 100만명으로 잡고 있다.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다른 유럽연합(EU)국가도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댔지만 폴란드는 유독 우크라이나와 관계가 돈독하다.
폴란드는 2015년 유럽 난민 위기 당시 EU의 시리아 난민 배분을 거부했을 정도로 난민과 피란민을 받아들이는데 소극적이었지만 우크라이나인이라면 다른 문제가 된다.
우크라이나 서부는 한때 폴란드 영토였고, 지금도 폴란드 선조를 둔 우크라이나인이 200만명에 달한다. 최근 수년간은 우크라이나인이 100만명 넘게 더 나은 삶을 찾아 폴란드로 이주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도 우크라이나에 체류중인 우리 국민이 폴란드 국경을 넘어 대피할 경우에 대비하고 있다.
정부는 한국시간 13일 오전 0시를 기해 우크라이나 전역에 최고 단계 여행경보에 해당하는 여행금지를 긴급발령했다.
폴란드 주재 한국대사관은 우크라이나에 체류 중인 197명의 국민이 폴란드·우크라이나 9개 국경검문소 중 2개 검문소를 통해 폴란드로 입국할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 출입국당국과 협의를 마쳤다고 밝혔다.
폴란드는 팬데믹 이후 우크라이나 국경을 통한 제3국 국민의 출입국을 전면 금지했지만 우크라이나 위기가 고조하면서 12일부터 예외적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제3국 국민의 육로 입국을 허용하기로 했다.
한국대사관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폴란드 서부 국경 도시 리비우로 가는 버스로 우크라이나에 체류중인 한국 국민이 도착해 육로로 폴란드 국경을 넘으면 이들이 폴란드에서 직항편으로 출국하거나 한인사회가 크게 형성된 브로츠와프에 장기 대피 숙소 등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임훈민 주폴란드 대사는 "우크라이나에서 우리 국민을 실은 버스 편이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는 내일부터 현지에 인력을 파견해 폴란드로 대피하는 우리 국민을 도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yulsi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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