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127만 명 사망…슈퍼버그, '강 건너 불' 아니다

입력 2022-02-16 17:32  

한해 127만 명 사망…슈퍼버그, '강 건너 불' 아니다
세균 외막의 물질 투과 제어하는 'RNA 스펀지' 발견
항생 물질 효능 높이는 열쇠? 새 항생제 개발 '청신호'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연구진, 저널 '몰레큘러 셀'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모든 항생제가 듣지 않는 다제내성균(일명 슈퍼버그)은 세계 보건 의료계의 심각한 위협으로 부상한 지 오래다.
최근 저널 '랜싯'(Lancet)에 실린 한 보고서는, 항생제 내성 세균의 감염으로 한 해 최소 127만 명이 생명을 잃는다면서 2050년이 되면 사망자 수가 1천만 명에 달할 거로 경고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재 많은 과학자가 새로운 항생 물질을 찾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유전자 프로그램으로 작용하는(programmable) RNA 기반 항생제도 그런 시도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런 항생제를 개발하려면 핵심 RNA 기반 신호 경로와 세균 감염의 진행 메커니즘을 매우 깊게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 분야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독일 뷔르츠부르크대(JMU) 과학자들이 살모넬라균 외막의 물질 투과에 관여하는 '작은 RNA'(small RNA)를 찾아낸 것이다.
이 발견은 다제내성균을 효과적으로 퇴치하는 새로운 항생제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이 대학 '분자 감염 생물학 연구소'(IMIB)의 외르크 포겔 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저널 '몰레큘러 셀'(Molecular Cell)에 논문으로 실렸다.
16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살모넬라균, 대장균 등 많은 박테리아는 두 개의 막, 즉 외막과 내막이 세포벽의 양쪽을 감싼 구조로 되어 있다.
이런 다층 구조의 주 기능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내부를 보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균이 살아남아 번식하려면 반드시 영양분을 흡수하는 투과성도 겸비해야 한다.
세균이 어떤 물질은 통과시키고, 어떤 물질은 차단할지 제어하는 덴 많은 RNA가 관여한다. 물론 항생제는 차단 물질에 포함된다.





포겔 교수팀은 살모넬라균의 외막에서 물질 투과 제어에 관여하는 작은 RNA(MicF sRNA)에 주목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RNA 스펀지'(RNA sponge)로 통하는 OppX가 MicF를 흡수함으로써 외막의 물질 투과를 간접 제어한다는 것이다.
똑같이 '작은 RNA'에 속하는 OppX는 실제 결합 표적으로 눈을 속여 MicF에 붙은 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MicF를 흡수했다.
MicF는 박테리아의 두 막이 어떤 물질을 통과시킬지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박테리아엔 외막과 내막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작은 비암호 RNA(Small non-coding RNA) 무리가 이를 제어하는 데 MicF도 이 그룹의 일원이다.
연구팀은 예루살렘의 헤브루 대학 연구진이 개발한 신기술을 이용해 살모넬라균에서 어떤 작은 RNA 사이에 상호작용이 이뤄지는지 밝혀냈다.
이 과정에서 OppX가 MicF를 흡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상세히 규명했다.
OppX는 박테리아 외막에 있는 구멍(학명 OmpF)이 더 많이 열리게 함으로써 외막의 투과성을 높인다.
그런데 OppX가 부족하면 박테리아의 성장이 제한됐고, 특히 영양소가 부족한 환경에선 그런 위축이 두드러졌다.
반대로 OppX가 풍족하면 외막의 OmpF 구멍이 더 활발히 열려 영양분 흡수가 증가했다.
OppX는 항생제 효능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보통 항생제는 OmpF를 통해 박테리아 세포 내로 들어가게 디자인된다.
포겔 교수팀의 기안루카 마테라 박사과정 연구원은 "OppX는 간접적으로 항생제 효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면서 "(OppX 발현을 조작해) 세균 외막에 OmpF 구멍이 더 많이 생기게 하면 안으로 들어가는 항생제도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OppX는 MicF를 제어하는 인자로는 처음 학계에 알려졌다.
최근 들어선 OppX가 MicF를 차단하는 가장 중요한 '스펀지 RNA'라는 걸 뒷받침하는 데이터도 발표됐다.




포겔 교수팀은 최근 숙주 세포에 감염한 살모넬라균의 RNA 상호작용체(RNA interactome) 암호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실험실 살모넬라균에 테스트한 결과를 좀 더 현실적인 조건에 적용할 준비가 된 셈이다.
포겔 교수는 "세균의 항생제 내성 문제는 이 시대의 중대한 보건 위협 가운데 하나"라면서 "우리의 기초 연구가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che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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