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러시아 대결에 낀 우크라이나 '유럽화 꿈' 멀어져

입력 2022-02-18 14:46  

서방·러시아 대결에 낀 우크라이나 '유럽화 꿈' 멀어져
지정학 요충·세력 균형에 희생…나토·EU 가입 난망
전쟁 피하려 나토 가입 포기 시사…국민투표 방식 고려



(서울=연합뉴스) 송병승 기자 =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 간 군사적 대결이 격화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유럽화 꿈'이 멀어지고 있다.
옛 소련권 국가인 우크라이나는 유럽연합(EU)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해 유럽 국가의 일원으로 경제·정치 통합에 참여하고, 안보 동맹으로 국가안보를 보장받기를 원한다.
우크라이나는 동서 냉전 이후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가 러시아의 영향에서 벗어나 EU와 나토 동맹의 일원으로 발전해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 같은 꿈을 키워왔다.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2000년대 중반부터 나토 가입을 추진했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속했던 크림반도를 병합하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의지는 한층 강해졌다.
나토는 1999년 헝가리·폴란드·체코 등 3국을, 뒤이어 2004년에는 발트 3국,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옛 소련권 7개국을 끌어들이며 확장했다.
2009년에는 알바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나토에 가입했다. 2017년에는 몬테네그로, 2020년에는 북마케도니아가 가입해 나토 동맹국은 30개국으로 늘어났다.
2008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는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를 언젠가는 나토에 가입시킬 것을 약속했다. 나토는 이후 이들 국가와 협력관계를 발전시켰다.
우크라이나에서는 2014년 반정부 시위가 크게 벌어져 친러시아 정권이 붕괴하고 친서방 성향의 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EU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유럽으로 끌어들이는 정책을 펴고 있다.
EU는 2014년 3월 우크라이나와 정치 분야 협력 협정을 체결한 데 이어 같은 해 6월 자유무역협정(FTA)을 포함한 '포괄적 협력협정'을 체결, 우크라이나의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지원했다.
우크라이나는 2019년 2월 개헌을 통해 나토 동맹과 EU 회원국 가입을 국가 주요 목표로 설정했다.
러시아는 이런 우크라이나의 '서방화'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러시아는 2008년 조지아를 침공했고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전격 합병했다.
러시아는 나토의 동진(東進)으로 자국 안보가 위협받는다면서 서방과 협상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와 나토의 확장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러시아는 나토가 독일 통일 과정에서 통일 독일의 영토를 넘어서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어기고 옛 소련권 국가를 받아들여 확장을 계속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국경을 맞댄 지정학적 전략 요충인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움직임에 러시아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전쟁도 불사할 태도다.



러시아는 지난해 4월부터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군사적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에 대항해 미국과 나토는 동유럽 동맹에 병력과 무기를 증강 배치하면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했다.
국토가 전장이 될 위기에 처한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을 포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나토 가입을 계속 추진할 의사를 밝혔지만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를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노선은 헌법에 명시됐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우리는 나토 회원국 자격이 우리의 안보와 영토적 통합성을 보장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나토 가입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누가 우리를 도와주겠는가. 그것은 꿈같은 일일 수 있다"고 털어놨다.
이 기자회견 하루 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지의 훈련 병력 일부를 복귀시킨다고 발표하자 우크라이나의 '나토 포기 제스처'가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나토 가입 문제를 국민투표에 회부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이라면 헌법에 규정된 나토 가입 목표 국민투표로 철회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가 폴란드 등 다른 동유럽 국가와 달리 나토 가입이 어려운 것은 유럽 내 세력 균형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러시아가 옛 소련권 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반대하지만 프랑스와 독일 등은 유럽의 안정을 위해 러시아의 요구를 어느 정도는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08년에도 나토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가입을 추진하기로 했을 때 프랑스는 유럽의 세력균형을 위한 올바른 결정이 아니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회담한 후 "러시아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유럽의 안전도 없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위기 해결 방안으로 '핀란드화'를 거론하면서 러시아 측의 안전보장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핀란드화란 서방과 소련 간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에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가 소련의 대외정책을 추종한 사례를 가리키는 용어다.
핀란드화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우크라이나의 국내외 정책에 대한 러시아 영향력 행사를 서방이 용인하는 것으로 비치는 만큼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방안은 우크라이나의 반발로 하루 만에 취소됐지만 언제든 이와 유사한 제안이 나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나토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명시적인 가입 일정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나토는 러시아와 협상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가입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복합적인 신호를 보냈다.
15일 러시아를 방문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가능성과 관련 "나토의 확장은 계획돼 있지 않고 논의되지도 않고 있으며 현안에도 없다"고 강조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최근 언론 회견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에 대해 회원국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나토가 우크라이나와 관계를 강화했다면서도 우크라이나는 아직 집단안보 원칙을 규정한 나토 헌장 제5조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EU도 우크라이나와 가입 협상에 미온적이다. 우크라이나는 아직 예비 후보국에도 오르지 못했는데, 이는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러시아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내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EU가 우크라이나의 가입 일정을 명확히 하지 않는 데 대해 불만을 표시하며 "우리는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종착점이 어디인가. 그것이 있기나 한가. 모든 우크라이나인은 그 신호를 보고 싶어한다"고 토로했다.
songb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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