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 죽이는 면역 반응, 감염 후반에 어떻게 멈춰질까

입력 2022-02-22 17:54   수정 2022-02-22 17:55

세균 죽이는 면역 반응, 감염 후반에 어떻게 멈춰질까
감염 단계별 '조절 T세포' 개입 메커니즘 발견
미국 라호야 면역학 연구소, 미국 국립과학원회보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인간의 면역계에 발현하는 모든 종류의 T세포는 각자 하는 일이 다르다.
건강한 면역계가 유지되려면 어떤 T세포도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특정 T세포가 정도를 벗어나 과잉 반응하면 자기 조직을 공격해 손상할 수 있다. 루푸스병이나 류머티즘 관절염 같은 자가면역 질환은 모두 면역계의 과민반응으로 생기는 것이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가 우리 몸에 감염했을 때 이에 맞서 싸우는 주 공격수는 CD8+(양성) 킬러 T세포다.
그런데 CD8+ 킬러 T세포가 건강한 자기 조직을 공격하지 않게 하려면 적절한 시기에 CD4+ T세포가 '조절 T세포'(Tregs)로 바뀌어 개입해야 한다.
이런 면역 조절 기능에 특화된 조절 T세포 하위 그룹(subset)을, 미국 라호야 면역학 연구소(LJI) 과학자들이 발견했다.
이 조절 T세포 그룹은 CD8+ T세포의 감염 초기 과잉반응을 억제해 감염증의 급속한 진행을 차단했다.
그런데 감염 후반엔 확연히 다른 조절 T세포 하위 그룹이 나타나 CD8+ T세포의 반응을 억제했다.
LJI 과학자들은 두 조절 T세포 그룹이 각각 다른 시기에 다른 경로를 거쳐 만들어지는 메커니즘도 확인했다.
이 발견은 인체가 어떻게 감염에 맞서 싸우고, 면역 과민반응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로 보인다.
LJI 암 면역학 센터의 스테펀 스훈베르허르 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25일(현지 시각)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논문으로 실릴 예정이다.



22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사전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스훈베르허르 교수팀은 리스테리아균(Listeria monocytogenes)에 감염되면 CD4+ T세포의 20∼40%가 조절 T세포로 전환한다는 걸 2020년 선행 연구에서 확인했다.
조절 T세포는 감염 초기엔 아무 일도 하지 않다가 감염 후반에 면역 반응을 차단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조절 T세포가 감염 초기의 '1차 파도'와 후기의 '2차 파도'로 나뉘어 발현한다는 걸 LJI 연구팀이 처음 입증했다. 이 연구 결과는 저널 '셀 리포트'에 실려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논문을 보면, 감염 후 7일이 지나면 두 번째 조절 T세포 그룹이 면역 반응 제어를 주도했다.
그런데 2차 그룹은 생물지표나 발달 경로가 1차 그룹과 전히 달랐다.
2차 조절 T세포 그룹은 감염이 상당히 진행된 뒤 결집한 대규모 CD8+ T세포 그룹에 대응하는 특수부대 같았다.
그러나 2차 조절 T세포 그룹은 감염 부위로 이동하는 데 뜸을 들였다. 염증 제어를 주목표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 T세포는 CD8+ T세포 반응이 거의 끝날 즈음에 나타나 '이제 감염증이 제거됐다'는 신호를 내보냈다.
흥미롭게도 두 조절 T세포 그룹은 아데노신(adenosine) 반응도 서로 달랐다.
아데노신은 핵산의 분해 경로에 작용하는 효소 중 하나다.
그런데 병원체가 침입해 세포가 죽어도 DNA에서 떨어져 나온 아데노신이 그 잔해에서 발견된다.
1차 그룹은 이런 아데노신을 위험 신호로 간주하고, 다른 분자를 끌어모아 작은 '아데노신 구름'(clouds of adenosine)을 만들었다.
이것이 CD8+ T세포 수용체와 결합하면 이들 T세포가 건강한 조직을 손상하는 능력이 감퇴했다.
2차 발현한 조절 T세포 그룹은 CD8+ T세포의 반응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감염 부위에 나타났다.
이 그룹은 cAMP(아데노신의 일종)로부터 생성된 면역 반응 조절 분자를 축적했다가 주변의 CD8+ T세포에 전달했다.
확연히 다른 두 개의 조절 T세포 그룹이 복잡한 경로를 거쳐 감염 전후반에 교대로 개입하는 덴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감염이 진행되는 동안 킬러 T세포와 조절 T세포의 균형을 조화롭게 유지하는 것이었다.




네덜란드 출신인 스훈베르허르 교수는 "조절 T세포와 CD8+ T세포 사이의 균형은 온·오프 스위치처럼 간단히 이뤄지지 않는다"라면서 "면역 반응을 가속하거나 감속하는 경로가 각각 따로 있다는 게 이번 연구에서 분명히 드러났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후속 연구를 통해,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조절 T세포 그룹이 CD8+ T세포에 관여할 때까지 어디서 대기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확인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수지상세포나 대식세포 같은 항원 제시 세포가 조절 T세포의 작용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주요 연구 과제로 잡혔다.
che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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