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크라 국경에선] 폴란드 건너와 휴지·버터 사재기

입력 2022-02-23 10:10  

[지금 우크라 국경에선] 폴란드 건너와 휴지·버터 사재기


(제슈프[폴란드]=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22일(현지시간) 오전 우크라이나와 맞닿은 폴란드 남동부 메디카 국경검문소 옆에 슈퍼마켓 '비에드론카'는 이른 아침부터 '외국 손님'으로 붐볐다.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로 국경을 넘어온 이들이다.
한 우크라이나 주민이 미는 카트를 들여다보니 휴지와 버터, 돼지고기, 밀가루, 커피, 기저귀, 설탕이 가득 차 있었다.
"카트가 가득 찼다"는 말에 이 주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건을 사서 빨리 우크라이나로 돌아 가려고 한다"라고 답했다.
자신이 폴란드에 온 사이에 혹시 전쟁이라도 나면 국경이 닫힐테고 그렇게 되면 가족과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밀가루와 설탕이 잔뜩 담긴 슈퍼마켓 봉지를 든 볼로디미르 씨는 "우크라이나에서 물건을 사러 왔다"라며 "혹시 몰라 식료품을 샀다"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씨도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다급히 승용차를 몰고 가족이 있는 우크라이나로 향했다.
간밤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국경지대 돈바스 지역에 군을 진입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돈바스 지역과는 정반대 쪽인 우크라이나 서부에 사는 주민들까지 폴란드로 건너와 슈퍼마켓에서 사재기를 하는 모습에 우크라이나 국민을 순식간에 집어삼킨 전쟁의 공포와 불안을 체감할 수 있었다.
메디카 검문소의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도로는 이날 적막이 감돌 정도로 차량이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평상시엔 우크라이나로 넘어가려는 트럭으로 3∼4㎞씩 줄이 생기는 곳이다. 지난주만 해도 몇 시간 동안 긴 줄에서 기다리다 지루해진 트럭 운전사들이 차에서 내려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나눠 피우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날은 우크라이나 쪽으로는 승용차만 가끔 보일 뿐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가능성이 커지자 우크라이나 입경을 꺼리는 듯했다.
검문소 인근에서 함께 취재 중이던 외신 기자들도 완전히 사라진 트럭 행렬이 의아하다고 했다.
뉴욕에서 왔다는 한 사진기자는 "지난주에 왔을 때는 긴 줄이 있었는데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다니 놀랍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로 넘어오는 반대쪽 도로엔 승용차나 트럭은 평상시보다 자주 보였다.
메디카 국경검문소는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리비우와 도로가 이어져 있다. 이 검문소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했을 때 피란민이 육로를 통해 폴란드로 탈출할 수 있는 주요 길목 중 하나다.
우리 정부는 지난 16일부터 우크라이나 리비우와 폴란드 메디카 국경검문소 인근 프셰미실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우리 국민의 육로 대피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는 우리 국민의 수는 총 63명이다. 아직은 연락사무소를 이용한 한국 국민은 없지만 전쟁 발발에 대비해 외교부 직원들이 비상 대기 중이다.
임훈민 주폴란드 한국대사는 "우리 교민이 한 명이라도 더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새벽까지 교민 회의 등을 통해 대책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yulsid@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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