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일촉즉발] 바이든, '러 침공' 규정해 제재 나서…신냉전 현실로(종합)

입력 2022-02-23 08:42   수정 2022-02-23 11:47

[우크라 일촉즉발] 바이든, '러 침공' 규정해 제재 나서…신냉전 현실로(종합)
'1차 제재' 언급하며 단계적 제재 시사…외교 해법 열어뒀지만 대화 중단
일본·대만·싱가포르 등 아시아국 끌어들여 수출 제재 타격 강도 높일 듯


(워싱턴=연합뉴스) 김경희 특파원 = 미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 승인 및 군대 파병명령 발표 하루 만에 이를 '침공'으로 규정하고 본격적인 제재에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분쟁 지역 파병 방침에 이어 미국과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잇따라 강도높은 제재로 대응하며 양측이 이른바 '신냉전' 전선을 두고 충돌하는 모습이다.
아직은 양측 사이에서 신중한 줄타기를 하고 있지만 미국의 노골적 견제를 받고 있는 중국의 향후 움직임에 따라 충돌의 증폭치가 확연히 달라질 수도 있어 주목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백악관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invasion)이 시작됐다"며 이를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하고 제재 방침을 밝혔다.
미국 정부는 러시아 최대 국책은행인 대외경제은행(VEB)과 방위산업 지원특수은행인 PSB 및 42개 자회사를 제재대상에 올려 서방과의 거래를 전면 차단했으며 이들에 대한 해외 자산도 동결하기로 했다.
서방 금융권에서 러시아의 국채 발행 및 거래 역시 전면 중단해 돈줄을 압박하고 나섰다.

이는 우크라이나 국경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이후 미국이 러시아에 내린 공식적인 첫 제재다.
미국은 전날 DPR과 LPR에 대한 제재 행정 명령을 내리면서도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발표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의 행동을 강하게 규탄하면서도 이를 '침공'으로 규정하지는 않아 보수 진영을 포함한 일각의 비판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동맹국과 밤샘 숙의를 거친 이날 오전부터 백악관의 기류는 한층 선명한 강경 대응노선에 무게를 실었다.
존 파이너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이 이날 오전 CNN에 출연해 "이것을 침공의 시작으로 본다"며 러시아의 파병을 강하게 규탄했고,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트윗을 통해 노르트스트림-2 중단 소식을 전하며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침공'으로 보고 있다는 분위기를 전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 스스로가 이번 조치를 '1차분 제재(first tranche)'로 언급하며 "러시아가 추가 행위를 할수록 우리도 제재 수위를 높일 것"이라고 단계적 제재를 공식화했다.
이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제재는 러시아의 향후 행동에 맞춰 한층 강도를 더해갈 전망이다.
금융에 초점을 맞춘 이번 제재만 놓고 본다면 러시아의 2개 은행에 국한된 만큼 금용 시스템 전체를 마비시키는 수준에는 이르지 않았다.
또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 배제 조치 역시 포함되지 않아 일단 강력하지만 제한적 조치를 우선 내놓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은 그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2014년 크림반도 합병 당시와는 비견할 수 없는 수준의 고강도 제재를 각오해야 할 것이라며 광범위한 금융·수출 제재를 예고해 왔다.
특히 중국 기업 화웨이에 치명적 타격을 입혔던 '해외직접생산품규칙(Foreign Direct Product Rule)'을 러시아식으로 적용, 반도체를 중심으로 러시아 산업 전반에 타격을 입히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백악관은 최근 이 같은 수출 통제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아시아 국가들에 제재 동참을 요구했고, 일본과 대만, 싱가포르 등 3개국이 이에 대한 지지 입장을 전해왔다고 포린폴리시가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연설에서 마지막까지 외교적 해법의 여지를 남겨놓기는 했지만 무게중심은 대화에서 제재와 군사력을 토대로 한 억지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당장 모든 대화가 중단됐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과 회담 직후 국무부에서 연 공동기자회견에서 "더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24일 예정된 미러 외무장관 회담 취소를 공식화했다.
미러가 원칙적으로 필요성에 공감을 표한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도 일단 가시권에서 멀어졌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별도 브리핑에서 "외교의 문을 닫아놓지는 않았지만, 러시아가 경로를 바꾸지 않는 한 외교는 성공할 수 없다"며 "현 시점에서 미러 정상회담은 당연히 계획이 없다"고 못박았다.
그는 정상회담 성사 조건으로 러시아의 철군을 비롯한 긴장 완화 조치를 제시했다.
이번 사태의 또 다른 변수인 중국은 아직까지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전날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통화에서 "모든 국가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도 존중받아야 하고, 유엔 헌장의 취지와 원칙을 반드시 수호해야 한다는 것이 중국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양비론을 견지했다.
하지만 중국이 러시아의 행동을 두둔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꿀 경우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러시아와 중국의 권위주의체제간 대결과 경쟁이 본격화하는 신냉전의 먹구름은 더욱 짙어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kyungh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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