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가격 급등 지속에 기업 수익성 악화 불가피…TV-자동차 현지생산 차질 전망
재계, 러시아 제재 수위 촉각…美 조치에 따라 국내 기업의 대러 수출도 영향
(서울=연합뉴스) 산업팀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현실화하면서 국내 산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뿐만 아니라 국제유가·천연가스 등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라 국내 산업계가 전방위적으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전면 제재를 검토하는 가운데 우리 정부도 제재에 동참할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대(對)러시아 교역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 제재 수위에 따라 러시아 교역 차질 불가피
24일 업계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이 전해지자 우리 기업들은 미국의 제재 수위에 촉각을 세우며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삼성전자[005930]와 LG전자[066570] 등 우크라이나 현지에 법인이나 공장을 둔 기업들은 이미 한국인 주재원들을 철수시킨 상태다.
이들 기업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라 현지법인을 비상운영 체제로 전환하고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다만 러시아에 있는 삼성·LG전자의 TV 생산공장은 현재 정상적으로 가동 중이고 주재원도 남아 있는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지정학적 리스크 증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 등 경영에 미칠 환경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주요 국가들의 대응에 따라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이 이날부터 러시아에 대한 전면 제재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우리 정부도 러시아가 전면전을 감행할 경우 대러 수출통제 등 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해 기준 우리 수출의 약 1.6%, 수입의 2.8% 비중을 차지하는 10위 교역대상국이다. 자동차·부품(40.6%), 철구조물(4.9%), 합성수지(4.8%) 등이 전체 러시아 수출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주요 수입품목은 나프타(25.3%), 원유(24.6%), 유연탄(12.7%), 천연가스(9.9%) 등으로 에너지가 전체 러시아 수입의 70%를 차지한다.
현재 러시아에는 현대차[005380], 기아[000270],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005490], 아모레퍼시픽[090430], 오리온[271560] 등 한국 기업 40여개사가 진출해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현실화될 경우 국내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다수 포진해있는 자동차, 자동차부품, 화장품, 합성수지 등을 중심으로 교역 차질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 반도체 희귀가스 수급·자동차 현지 생산 차질 우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희귀가스인 네온(Ne)과 크립톤(Kr)을 주로 수입하는 국내 반도체 업계 역시 초긴장 상태다.
반도체 식각공정에 사용되는 크립톤은 지난해 전체 수입 물량의 48.2%가 우크라이나(30.7%)와 러시아(17.5%)에서 수입됐고, 노광공정에 쓰이는 네온 중 28.3%가 우크라이나(23.0%)와 러시아(5.3%)에서 들어왔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희귀가스 재고가 충분하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외에도 공급선을 확보하고 있어 라인 가동에는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며 "다만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공급 부족에 따라 비용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이번 사태가 현재 운영 중인 러시아의 현지 공장에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는 중이다.
아직은 직접적 타격이 없지만,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고강도 제재가 발동되면 러시아 공장에서 필요한 유럽발(發) 부품 수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게 되고, 결국 공장 가동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러시아 공장 연간 생산량은 23만대에 이른다.
또 현대차와 기아는 대(對) 러시아 완성차 수출에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연간 10만대에 이르는 수출량이 각종 대러 무역 제재로 인해 제약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실제 미국은 자국 반도체가 들어간 자동차를 러시아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원자재 가격 상승에 기업들 수익성 악화 불가피
러시아는 주요 원유 생산국이면서 세계 1위의 천연가스 수출국이다.
이에 따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세가 지속되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도 배럴당 94.88달러를 기록해 전날보다 3% 뛰어올랐다.
국제 유연탄 가격도 급등세를 보인다. 국제 유연탄 가격은 호주 뉴캐슬탄 6천㎉ 기준으로 지난해 1월 t(톤)당 평균 103.0달러에서 같은 해 4분기(10∼12월) 272.3달러로 급등한 상태다.
국내 시멘트업계의 경우 수입 유연탄을 연료로 시멘트를 제조하는데 러시아산 의존도가 75%에 이를 정도로 절대적이다. 지금 당장은 러시아산 유연탄 수입에 문제는 없지만 전쟁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면 유연탄 가격이 더 오를 수 있어 업계 전체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국시멘트협회 관계자는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분쟁으로 러시아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유럽 국가들이 대체재로 유연탄을 찾으면서 수급 불균형이 발생해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며 "시멘트 제조 원가는 지난해 상반기 대비 30∼50% 올랐고, 유연탄 조달 비용을 포함해 전체 원가는 약 7천억∼8천억원 증가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알루미늄 가격이 급등하면서 거푸집의 일종인 알루미늄폼 가격도 상승하고 있다.
러시아는 세계 2위의 알루미늄 생산국으로, 경제 제재가 본격화되면 알루미늄 가격은 더 급등할 가능성이 크다.
이차전지 핵심 소재인 양극재에 들어가는 원재료 중 러시아 생산 비중이 비교적 높은 니켈과 알루미늄 가격도 최근 빠른 속도로 오르면서 배터리 기업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추정화 구미통상실장은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한국 간 교역 규모가 크지 않아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겠지만, 이번 사태로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 압력이 가중돼 기업들의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미국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시스템에서 러시아 은행을 배제하는 강도 높은 금융제재를 할 가능성도 거론된다"며 "러시아와 교역을 하는 기업들은 이 같은 시나리오에 대비해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정부도 면밀한 모니터링을 통해 기업 대응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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