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은행원, 물려받은 땅 5천㎡에 구글 검색만으로 조성
[※ 편집자 주 : '잘란 잘란'(jalan-jalan)은 인도네시아어로 '산책하다, 어슬렁거린다'는 뜻으로, 자카르타 특파원이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연재코너 이름입니다.]
(반튼[인도네시아]=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정말 이 길이 맞아요? 이렇게 좁고 험한 산길을 올라가면 한국 마을이 나온다고요?"
지난 24일 자카르타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2시간 넘게 걸려 도착한 반튼주 판드글랑군의 시골 마을에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해발 1천700m 높이 카랑산 중턱 1천500m 지점에 한국 마을을 표방한 공원 '카두 응앙'(Kadu Engang)이 자리 잡고 있다.
2020년 12월 20일 개장 후 코로나19 사태로 임시휴업을 반복했음에도 이미 4만명이 다녀갔고,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는 반튼주의 관광 명소로 소문난 곳이다.
산 아랫마을에서 차를 타고 카두 응앙 공원까지 30분 넘게 가파른 길을 오르며 여러 차례 주민들에게 "정말 이 길이 맞느냐"고 물었다.
한류 인기가 워낙 대단하긴 하지만, 인도네시아 시골 산 중턱에 한국 마을이 있을 줄이야.
카두 응앙 공원에 도착하니, 인근 학교에서 소풍 온 여학생들이 한복으로 갈아입으며 재잘거렸다.
여학생들은 "한국 드라마를 정말 좋아한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한국에 여행 온 듯한 기분을 낼 수 있으니 최고"라며 즐거워했다.
놀랍게도 카두 응앙 공원은 32세의 우스 수티아씨가 K-팝·K-드라마 열성 팬인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혼자 힘으로 조성했다.
우스씨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산 중턱 땅 5천㎡(1천500평)를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던 차에 아내가 '한국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만들어 달라'고, 소원이라고 해서 한국 마을을 만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자카르타에서 6년 차 은행원이었던 우스씨는 2020년 9월 퇴사하고, 같은 해 12월 공원을 개장할 때까지 '구글 검색'만으로 한국 마을을 조성했다.
그는 "아내뿐만 아니라 나도 한류 팬이라서 꼭 한국에 가보고 싶은데 지금까지 기회가 없었다"며 "인터넷에서 찾은 한국 이미지와 한글로 공원을 꾸미고, 한복 등 소품은 자카르타에서 대량 구매했다"고 말했다.
공원 입장료는 성인은 한국돈 1천원, 어린이는 500원을 받는다.
공원 곳곳에는 한글 간판과 태극기가 부착됐고, 한복도 빌려줬다.
하지만, 한국인 조언을 받지 못하고 구글 검색만으로 만들다 보니 '사링의 벽', '만족하사길 바랍니다' 등 곳곳의 맞춤법이 틀린데다 벚꽃과 후지산 그림, 대나무 우산 소품 등 일본 이미지가 뒤섞여 있었다.
주인도네시아 한국 문화원은 올해 1월 카두 응앙 공원을 처음 방문해 문제점을 찾아낸 뒤 한 달 동안 진짜 한국 마을 만들기 작업을 지원했다.
후지산 벽화와 벚꽃 장식을 없애고, 맞춤법이 틀린 한글 간판과 장식을 수정했다.
한국 느낌이 물씬 나도록 솟대와 청사초롱, 달집을 지원했고 QR코드를 휴대전화로 찍으면 한국 전래동화를 들을 수 있는 코너를 마련했다.
현지인들이 만든 '짝퉁 한복' 대신 정통 한복도 여러 벌 공원에 제공했다.
세종대왕과 한글을 소개하는 코너와 한국의 봄·여름·가을·겨울의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코너도 마련했다.
여학생들에게 포즈를 취해 달라고 했더니 "사랑해요"라고 한국어로 외쳐 깜짝 놀랐다.
공원 주인 우스씨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들 정말 한국을 좋아한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국에 여행 가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자바섬부터 수마트라섬, 찌아찌아족이 사는 부톤섬까지 인도네시아 전국 곳곳의 '한국 마을' 최소 8곳이 SNS에서 인기를 끌고, 현지 언론에 여러 차례 소개됐다.
한국문화원은 작년 4월 서부 자바주 타식말라야군 까랑러식의 한국 마을을 시작으로, 반둥에 이어 이번 반튼주 한국 마을까지 차례로 오류 수정을 지원했다.
문화원 김용운 원장과 김현주 팀장은 "카두 응안 공원은 산속에 있다 보니 최대한 자연 친화적으로 한국 분위기를 내도록 고려했다"며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고, 사업으로 연결한 '로맨틱 가이' 우스씨의 의지가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이날 지역 기자들과 함께 공원에 찾아온 판드글랑군 관광 부장 임론 물리아나씨는 "반튼주에 조성된 유일한 한국 테마 공원"이라며 "이 지역의 대표 관광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noano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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