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홍콩 행정장관 선거가 출마 신청 접수 이틀 전 전격 연기됐지만 대중은 '무반응'이다.
선거를 불과 37일 앞둔 시점이었으나 정가에서도 아무런 동요가 없다.
비판의 목소리는커녕 친중 진영에서는 '코로나19 통제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잘한 결정'이라는 지지가 이어졌다.
한발 더 나아가 친중 진영 '이너 써클'에서는 '무투표 당선', '협의를 통한 지명' 등의 가능성도 회자된다.
2014년 79일 동안 시위대가 도심을 점거한 채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한 '우산 혁명'이 일어났던 홍콩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8년이 흐른 현재, 홍콩국가보안법과 선거법 개정에 손발이 묶여버린 홍콩 야권과 시민은 행정장관 선거가 갑자기 연기돼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 홍콩, 마카오처럼 '단독 출마'로 가나
중국의 두 특별행정구인 홍콩과 마카오는 행정장관을 선거위원회(선거인단)를 통해 간접선거로 뽑는다.
출마 지원자는 선거위원회 위원 일정 수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경선에 나설 수 있다.
2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친중 진영 거물급들 사이에서 '마카오 모델'이 부상하고 있다.
마카오에서는 지난 17년간 네 차례의 행정장관 선거에서 중국의 '축복'을 받은 후보 한 명만 단독 출마해 무투표 당선됐다.
현 호얏셍(賀一誠) 마카오 행정장관은 2019년 선거 당시 현지 선거위원회 위원 400명 중 392명의 추천을 받았다.
반면 홍콩은 2002년 퉁치화(董建華) 초대 행정장관이 재선에 나섰을 때와 이후 그의 중도 사퇴로 2005년 열린 보궐선거에서 도널드 창(曾蔭權)이 당선됐을 때를 제외하고는 모두 경선이 펼쳐졌다.
민주 진영에서도 출마 자격을 얻어 경쟁했고, 특히 2012년과 2017년 선거에서는 친중 진영 사이에서도 불꽃 튀는 대결이 펼쳐졌다.
그러나 중국이 지난해 '애국자'만 출마를 할 수 있도록 홍콩의 선거법을 개정하면서 야권에서는 행정장관뿐만 아니라 모든 공직 선거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홍콩의 선거위원회(1천463명)도 과거와 달리 친중 진영 일색으로 채워졌다. 출마 자격을 얻으려면 선거위원 188명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하는데 야권은 물론, 웬만한 사람은 넘기 어려운 문턱이다.
지난해 12월 19일 치러진 입법회(의회) 선거가 30.2%라는 사상 최저 투표율을 기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야권이 불참한 선거에 대중이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하물며 행정장관 선거는 대중이 참여하지 않는 '체육관 선거'다.
한 20대 홍콩인은 "입법회 선거도, 행정장관 선거도 관심이 없다"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중국의 선택은…캐리 람 연임 놓고 설왕설래
행정장관 선거가 직전에 연기돼도 홍콩 정계가 조용했던 것은 주요 인물 중 출마 의사를 밝힌 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쿵푸 고수 등 4명이 출마하겠다고 했지만 이들이 출마에 필요한 선거위원 188명의 추천을 얻을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다.
그나마도 이들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는 소식은 친중 매체 어디서도 보도를 하지 않았다. 이는 이들에 대한 중국 정부의 언질이 없었다는 것을 시사한다는 해석이다.
역대 행정장관은 모두 중국 정부가 낙점한 인물이 됐기에, 이번에도 친중 진영은 중국 정부만 바라보고 있다.
중국 정부의 이례적인 긴 침묵 속 현 캐리 람(林鄭月娥) 장관이 연임할 수 있을지, 새로운 인물이 낙점될지를 놓고 여러 추측이 나온다.
SCMP는 "이달 초 춘제(春節·중국의 설) 연후 직후 뤄후이닝(駱惠寧) 중국 정부의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중련판) 주임이 친중 거물들을 하나씩 불러 행정장관 후보로 누가 적합할지 의견을 물었다"고 전했다.
이어 "한 참석자는 중국 정부가 그때까지도 여론을 탐색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면서, 이미 람 장관의 연임을 결정했다면 여론을 물어볼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고 부연했다.
중국 정부는 일단 행정장관 선거보다 홍콩의 심각한 코로나19 상황 통제가 급선무라고 보고 있다.
행정장관 선거는 코로나19가 안정된 후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람 장관은 앞서 5월 9일로 선거 연기를 발표하면서 한 차례 더 연기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또다시 연기된다 한들 홍콩 시민과는 상관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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