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전 뒤 48시간 동안 폴란드 국경에 우크라이나 피란민 10만명 몰려
검문소 앞서 2박3일 노숙한 끝에 간신히 입경…"거대한 혼돈, 악몽"
(메디카[폴란드]=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피란길은 거대한 혼돈이었습니다. 악몽을 꾸는 것 같았어요"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로 넘어가는 국경을 눈앞에 두고서 사나흘 만에 가까스로 유럽연합(EU)으로 가는 폴란드 국경을 넘은 피란민들은 자신이 겪은 일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은 표정이었다.
24일 새벽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서쪽 폴란드 국경으로 48시간 만에 피란민이 10만명 이상 몰렸다.
러시아군이 폴란드의 동, 남, 북쪽 3면으로 진격하고 있는 터라 서쪽으로 붙은 폴란드 국경에 피란민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폴란드가 전쟁 전부터 대비하긴 했지만 피란민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밀려온 탓에 작은 국경 도시에선 이들이 숙식할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안락한 집에서 살던 우크라이나인들은 이제 졸지에 낯선 남의 나라에서 길에서 먹고 자는 피란민 신세가 됐다.
우크라이나로 통하는 폴란드 메디카는 인적이 드물었던 고요한 마을이었지만 24일부터 피란민으로 가득 찬 '캠프'가 됐다.
경찰은 메디카 국경검문소 앞 2km 지점부터 차량 진입을 막아 임시로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에게 공간을 내줬다.
우크라이나에서 항공공학을 공부하다 피란한 프랭크 씨는 26일 "모든 사람이 어떻게든 국경을 넘으려고 난리"라면서 "거대한 혼돈이 벌어졌다"라고 말했다.
그는 "3박 4일간 국경 검문소 앞에서 계속 줄을 서 있었는데 4∼5시간 동안 한 발짝도 안 움직인 적도 있다. 당연히 화장실도 없었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방송에서만 보던 전쟁의 비극은 아이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했다.
"줄을 서 있는 동안 어린아이들의 울음이 끊이지 않았어요"
6개월간 우크라이나를 여행하다 전쟁이 나면서 키예프에서 피란길에 오른 알바니아인 왈라드 씨는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고 지난 2박 3일간의 고된 여정을 기억했다.
그는 "먼저 기차를 타고 14시간을 달려 서부 국경에 도착했다. 표가 없어도 태워줬다"면서 "이후 국경까지 15km를 걸어가 줄을 서서 2박 3일간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노숙을 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추위 속 오랜 기다림을 견디고, 메디카 국경 검문소를 통과해 폴란드 땅을 밟은 피란민들은 검문소 앞에서 담요를 두르고 자원봉사자에게 차를 받아 마시며 간신히 몸을 녹였다.
우크라이나가 24일 밤 국가 총동원령을 내려 18∼60세 남성의 출국을 금지하면서 피란민 중엔 여성과 아이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날 러시아군이 수도 키예프를 향해 여러 방향으로 총공격을 하고 시내 곳곳에서 시가전을 벌였다는 소식에 여행 가방을 끌고 가며 한숨을 내쉬고 눈물을 훔치는 이도 종종 보였다.
담요를 두르고 멍하니 우크라이나 쪽을 바라보는 엄마에 주변에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은 웃음을 지으며 자기들끼리 장난을 쳤다.
메디카 국경검문소 앞에는 피란민과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이들도 보였다.
우크라이나 젊은이들이 배낭과 새로 산 군화를 들고 조국으로 입국하기 위해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었다.
얼굴은 굳어있었지만 비장했다.
큰 배낭을 짊어진 한 남성은 왜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느냐는 질문에 "내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폴란드의 자원봉사자들은 물과 빵, 과자 더미를 산더미처럼 쌓아둔 채 피란민에게 먹을 것과 뜨거운 차를 분주히 나눠줬다.
일부 폴란드 시민은 자기 집에서 식료품을 가져와 피란민을 위한 식료품 보관소에 놓아두기도 했다. 먹을거리를 놓고 가는 폴란드 시민과 가져가는 우크라이나 피란민의 손길이 교차했다.
또 짐이나 옷을 충분히 챙겨오지 못한 피란민들을 위해 방한복이나 아이를 위한 장난감, 기저귀 등을 길가에 쌓아 놓고 나눠주는 자원봉사자도 쉴 틈이 없었다.
한 피란민 엄마는 옷더미에서 아이들을 위한 따뜻한 점퍼와 장난감을 정성껏 담았다.
검문소 옆에서는 인근 접경도시 프셰미실시로 가는 대형버스가 속속 출발했다. 잠시 숨을 고른 피란민들은 무작정 버스에 올라타 검문소 앞을 떠나 몸을 의탁할 곳을 향했다.
프셰미실시 초입 공터에서 내린 피란민들은 바르샤바나 크라쿠프 등으로 가는 버스를 타거나 프셰미실시 도심으로 가는 시내버스에 가득 올랐다.
버스 운전사는 시동을 걸어 기약도, 정처도 없는 피란살이의 시작을 알렸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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