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러, 제2도시 민간지역 무차별 포격…전쟁 새 국면(종합2보)

입력 2022-03-01 15:43   수정 2022-03-01 20:03

[우크라 침공] 러, 제2도시 민간지역 무차별 포격…전쟁 새 국면(종합2보)
"군사시설 집중하다 진격 지체에 민간지역으로 목표 선회"
하리코프 시장 "아동 3명 등 최소 9명 숨져…일가족 5명, 차량폭격에 산채로 불타"
"남부 마리우폴서도 민간지역 포격에 6살 어린이 잠옷 차림 사망"



(서울=연합뉴스) 김태종 황철환 기자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주요 거점 도시의 민간인 지역에도 포격을 가하면서 이번 전쟁이 새 국면을 예고하고 있다.
러시아는 그동안 우크라이나 군사시설만 타격했다고 주장해 왔는데 진격이 지체되면서 이제는 민간인도 '무차별 포격'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1일(현지시간) NBC 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침공 닷새째인 지난 28일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의 제2 도시인 하리코프 민간인 거주지역을 폭격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과 하리코프에서 며칠째 교전을 해왔다. 교전 여파가 민간지역에까지 확대한 것이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영상에는 인구 140만 명의 하리코프 전역에 폭발이 있었고, 아파트는 흔들려 연기가 나는 모습이 담겼다.
아파트 밖에는 시체가 널려 있고 거리에는 불이 나는 모습도 목격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러시아군이 하리코프 시내 중심가에 다연장 로켓 공격을 가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한 여성이 폭발에 휘말려 한쪽 다리를 잃는 모습이 영상에 잡히기도 했다고 전했다. 통금이 잠시 해제된 틈을 타 장을 보러 나왔던 이 여성은 곧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민은 포격이 진행되는 동안 대피소에 숨어있었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톤 헤라셴코 우크라이나 내무부 장관 보좌관은 페이스북에 "수십 명이 죽고 수백 명이 다쳤다. 이 끔찍한 장면을 전 세계가 봐야 한다"며 영상을 올렸다.
NBC는 이 영상들이 '진짜'라고 확인했으며, 다만 정확한 사상자 수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AP 통신도 하리코프 영상에 민간인 거주지역이 포격을 받았고, 아파트는 반복적인 강력한 폭발해 흔들렸으며, 섬광과 연기가 목격됐다고 전했다.
올레 시네구보프 주지사는 민간 지역 공격으로 11명이 죽고 수십명 이상이 다쳤다고 밝혔다.
그는 "포격은 사람들이 약국과 가게에 가고 물을 마시기 위해 밖으로 나갈 때인 대낮에 발생했다"며 "이는 범죄"라고 로이터 통신에 말했다.
이호르 테레코프 하리코프 시장도 어린이 3명을 포함해 최소 9명이 숨지고 37명이 다쳤다면서 "미사일이 주거용 건물을 타격해 비폭력적인 시민을 살상했다. 이건 이번 사태가 그저 전쟁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인에 대한 학살이란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숨진 9명 가운데 4명은 식수를 구하려 방공호 바깥으로 나왔다가 변을 당했다. 나머지 5명은 어른 2명과 아이 3명의 일가족으로 차를 타고 있다가 포탄을 맞는 바람에 산 채로 불타 목숨을 잃는 결말을 맞고 말았다고 테레코프 시장은 전했다.



가디언은 러시아군이 전날 경장갑 차량을 동원해 하리코프를 점령하려다 우크라이나군에 격퇴된데 대한 보복으로 이날 하리코프 시내에 무차별 로켓 공격을 가했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황을 고려하더라도 민간 지역에 대한 포격은 러시아 공격 수위가 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더 공격적인 전술을 꺼내 들 가능성을 경고했다고 NBC는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공격의 수위를 높이는 간단한 방법으로 러시아는 우리에게 압박을 가하려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국 매체 이코노미스트도 하리코프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로켓 공격이 이뤄졌다며 이번 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인은 하나의 민족이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인을 죽이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 사람들은 틀렸다고 덧붙였다.
수도 키예프 시민들은 다음 차례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키예프의 한 커피숍 직원인 걀라는 "하리코프 다음은 우리가 될 것"이라며 "러시아 탱크가 키예프로 밀고 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실제, 안드리 자고로드니우크 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러시아가 다연장 로켓 무기로 민간 지역을 공격하고 있다면서 키예프와 마리우폴도 같은 무기에 공격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벨라루스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첫 협상이 개시되면서 28일 수도 키예프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세는 다소 소강 상태를 보였으나, 마리우폴의 경우 도시를 포위한 러시아군의 집중 포화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마리우폴에서 잠옷 차림의 6살 여자 어린이가 아파트를 직격한 포탄에 중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왔으나 결국 목숨을 잃었고, 키예프에서도 9∼10세로 보이는 여자 어린이가 러시아측 파괴공작원들이 쏜 총에 살해됐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북동부 체르니히우에서도 쇼핑센터에 미사일이 떨어지는 등 극심한 전투가 이어지고 있다.



자고로드니우크 전 국방장관은 "러시아가 전략 목표는 유지한 채 전술을 조정할 것으로 전망한다. (새 전술에는) 우크라이나 전역에 대한 미사일 공격 및 공습 등이 포함될 수 있다"면서 "이에 더해 우연히 민간 목표물을 파괴하는데서 계획적으로 민간 기반시설을 겨냥한 테러 활동으로 전환해 패닉을 조장하고 항복을 받아내려는 시도가 이뤄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비영리 연구기관인 CNA의 러시아 군사 전문가인 마이클 코프만도 러시아군이 전술 변화를 꾀하는 정황이 일부 있다면서 "우리는 러시아군이 화력과 타격, 공군력을 더 많이 이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에 대한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반감은 꾸준히 커지는 모양새다.
지난달 27일 러시아군이 아조프해 연안 주요 도시인 베르댠스크의 관공서 건물을 점령했을 때는 시민들이 건물 주변을 둘러싼 채 우크라이나 국가를 부르며 '푸틴은 멍청이(dickhead)'를 연호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4일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의 '특별 군사작전'을 명령하면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현지 주민들을 보호하는 것이 작전의 유일한 목표라고 말했다.
민간인에 대한 포격이 속출한 하리코프는 러시아어 사용자가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지역 중 하나다.
우크라이나 언론인 크리스티나 베르딘스키흐는 "이것이 러시아어 사용 주민을 보호하는 것인가? 우리는 이 모든 죽음과 관련해 러시아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분노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보건부는 러시아군의 침공 이후 어린이 14명을 포함해 민간인 352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27일 밝혔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28일 개막한 제49차 유엔 인권이사회 정례 회의에서 24일 이후 현재까지 어린이 7명을 비롯해 최소 102명의 민간인이 숨지고 304명이 다친 것으로 파악됐으나 "실제 (사상자) 숫자는 유감스럽게도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러시아 측은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 민간인 지역을 포격해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바실리 네벤쟈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민간인 (사상) 수백명 등 많은 보도가 나왔으나, 가짜뉴스가 많고, 그런 뉴스를 생산해내는 가짜뉴스 공장도 많다"면서 "민간인 인명피해와 관련해선 믿을 수 있는 보도가 없다"고 말했다고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은 전했다.
taejong75@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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