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국방 "그냥 말에 그칠 것"…"진군 지체에 분노·좌절 표현"
미 외교관 "침공 정당화 시도"…서방 "핵위기는 아냐" 이구동성
(서울=연합뉴스) 차병섭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행한 데 이어 '핵 억지력' 발언까지 내놓자, 취지가 불분명한 이 발언을 둘러싸고 해석이 분분하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TV 연설에서 핵무기를 포함한 억지력 부대에 '전투 임무 특별 모드' 돌입을 지시했다.
냉전 종식 이후 강대국의 핵위협 자체가 없었던 까닭에 전쟁 중에 나온 푸틴 대통령의 발언은 세계인의 경계심을 자극했다.
그러나 분석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핵 보복의 위험성을 아는 만큼 실제 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의사라기보다는, 대중들을 겨냥한 언사로 평가했다.
1일 BBC방송 등에 따르면 벤 월러스 영국 국방부 장관은 러시아의 핵 태세에 큰 변동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그냥 말에 그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부 서방 관리들은 이번 발언의 배경에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오판이 있다고 해석했다.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이 예상보다 강하고 제재를 위한 서방의 단일 대오가 형성된 상황에서 이 같은 강경 발언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한 영국 퇴역장성은 "분노와 좌절, 실망의 표시"라고 해석했다.
러시아의 한 안보분석가는 푸틴 대통령에게 남은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판단을 그런 강경발언의 배경으로 주목했다.
이 전문가는 "서방이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을 동결하면 러시아 금융시스템은 사실상 붕괴할 것"이라며 유럽으로의 가스 수출 중단이나 핵무기 사용 정도의 선택지가 있다고 봤다.
다른 한편에서 푸틴 대통령의 핵 태세 발언이 국내 정치용으로 나왔다는 해석도 있다.
린다-토머스 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해당 발언은 우크라이나 침공이 외세의 위협에 맞서 자위 차원에서 이뤄졌음을 정당화하려는 것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푸틴 대통령의 발언은 자국민에게 전쟁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통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 서방 제재에 대한 경고 메시지라는 얘기도 있다.
푸틴 대통령은 전날 연설에서 "나토 회원국 고위 관리들까지 러시아에 공격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이는 러시아와 나토간 충돌 가능성을 경고한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의 발언 등을 겨냥했다는 게 러시아 측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군의 핵 경계수준이 가장 낮은 단계에서 한 단계 격상된 것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분명치 않은 상황이다.
서방은 푸틴 대통령의 발언 이후 긴장 고조를 막기 위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미국인들이 핵전쟁에 대해 우려해야 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아니다"라면서, 핵전쟁 가능성을 부인했다.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의) 핵 경보 수준을 변경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밝혔고,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긴장을 고조시키는 만큼 불필요한 지시"라고 말했다.
서방 정보관리들은 현 상황이 핵 위기가 아니며 그렇게 흘러가서도 안 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bs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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