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폭증 속 '도시 봉쇄' 시기·규모 불확실해 불안 증폭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홍콩이 도시가 봉쇄될 것이라는 전망에 패닉 상태에 빠졌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시민들이 생필품 사재와 현금 인출에 나서자 "마치 전쟁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표현했다.
홍콩 정부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며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 "도시 봉쇄 안 해"→"배제 안 해"…이랬다저랬다 불안 키워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지난달 22일 750만 시민 강제 전수 검사를 3월에 3회 실시한다고 발표하면서 "도시 봉쇄는 병행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엿새 후인 28일 소피아 찬 보건장관이 한 라디오 방송에서 도시 봉쇄 여부에 대해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히자 시민들이 슈퍼마켓과 약국으로 달려가 닥치는 대로 생필품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인터넷 쇼핑도 접속자 폭증으로 주문 대기 번호표를 발급했고, 배송은 10여일 이후에나 가능한 것으로 표시됐다.
해열제와 감기약 등은 동이 났고 현금 인출기 앞에도 줄이 길게 서는 광경이 연출됐다.
그러자 당일 저녁 람 장관은 "도시 봉쇄는 결정 나지 않았다"며 시민들에게 "침착하라"고 당부했다.
중국의 코로나19 전문가를 마중하러 나간 자리에서 한 발언인데, 당시 현장에는 공영방송 RTHK 취재진만 동행이 허락됐던 탓에 그나마도 그 발언은 다른 언론에는 바로 소개되지도 못했다.
SCMP는 "홍콩 정부가 람 장관의 현장 발언 영상을 뒤늦게 올리면서 해당 발언은 당일 오후 9시께가 돼서야 다른 언론을 통해 소개됐고, 람 장관 발언의 중국어 전문은 오후 11시가 돼서야 정부 홈페이지에 올라왔다"고 지적했다.
시민들이 '패닉 바잉'에 나서며 난리가 시작됐는데 그에 대한 행정부 수반의 반응은 한참 뒤에야 전해진 것이다. 심지어 이는 '봉쇄는 안 한다'던 기존 입장에서 바뀐 것임에도 은근슬쩍 넘어가는 모양새였다.
문제는 그로부터 하루가 지나도록 홍콩 정부가 '도시 봉쇄'에 대해 정확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는 가운데 시민들의 사재기 광풍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홍콩 정부는 지난 1일 밤에야 대변인 성명을 통해 "지금은 사람들이 행정부가 배포하는 정보에 주의를 기울일 때"라며 "숨은 의도를 가진 이들이 퍼뜨리는 루머에 현혹되지 말라. 겁에 질리지 말고 이성적 행동을 하라"고 당부했다.
명보는 "정부가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아 시민들 사이에 공포감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다.
◇ 도시 봉쇄 시기·규모 불확실…'금융 부문 열외' 고려
홍콩 정부 대변인은 성명에서 전수 검사의 영향에 대해 신중하게 평가하고 있으며, 어떤 식으로 강제 검사가 진행돼도 국제 금융 허브로서 홍콩의 위상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음식과 생필품을 구매하거나 의료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필요를 잘 인지하고 있다"며 "공포 속에 사재기에 나설 필요가 없다"며 안심시키려 했다.
'도시 봉쇄'의 시기와 규모를 놓고는 갑론을박이다.
홍콩 언론들은 이달 17일이나 26일께부터 9일간 봉쇄가 이뤄질 것이라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는 친중 정치인들이 '도시 봉쇄는 안 한다'는 람 장관을 비판하며 내놓은 안이기도 하다.
앞서 마이클 톈 입법회 의원은 지난달 23일 "봉쇄 없이, 사람들의 이동을 통제하지 않는 강제 검사는 '미친 짓'"이라며 "9일간 봉쇄를 하고 가구당 한 사람이 매일 2시간씩 식료품 등 필수품 구입을 위해 외출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 외에도 일부 전문가와 친중 정치인들은 전수 검사 기간 도시를 봉쇄해야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2일 현재 의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전수 검사를 4월 이후로 미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신규 환자 규모가 아직 정점에 달하지 않았고, 전수 검사는 정점이 지난 다음에 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의견이다.
홍콩대 연구진은 5차 확산의 정점에는 신규 환자가 18만여 명에 달할 것이라며 정점에 달하기 전에는 중국 인력의 지원을 받더라도 폭증하는 환자 규모를 의료 체계가 감당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SCMP는 "전문가들은 정점이 지난 후 확실한 봉쇄 속에서 전수 검사를 진행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도시 봉쇄가 중국식 전면 이동 통제로 갈지 아니면 생필품 구입을 위한 외출을 허용하는 유럽식으로 갈지도 불분명하며, 말 그대로 홍콩 전역을 일제히 봉쇄할지 아니면 주거지별로 봉쇄할지 여부도 아직 고려 대상이다.
또한 주식시장 등 금융 부분은 봉쇄에서 제외할 것인지도 관심사다.
홍콩 친중 진영 최대 정당인 민주건항협진연맹(민건련·DAB)은 1일 성명을 통해 "봉쇄는 가능한 한 단기간에 진행해 파장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가구당 한 명은 식료품 구입을 위한 외출을 허용하고 슈퍼마켓, 경찰, 약국, 병원은 봉쇄에서 면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SCMP는 "당국이 증권, 은행 등 다양한 금융 분야는 봉쇄 대상에서 제외해 영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고려하고 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 홍콩 코로나19 악화일로…누적 환자 24만명
홍콩의 코로나19 상황은 악화일로다.
신규 환자가 3만명대로 올라선 가운데 1일 현재 누적 환자는 23만8천377명, 누적 사망자는 1천23명이다.
특히 고령층의 백신 접종률이 저조한 상황에서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영안실 부족 사태에 직면해 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일부 시신이 응급실에 그대로 안치돼 있는 충격적인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다.
AFP 통신은 인구 100만명당 코로나19 사망자 비율에서 홍콩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높다고 지적했다. 1일에만 172명의 사망자가 보고됐다.
환자 폭증 속 사회 여러 분야에 걸쳐 영업 중단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우체국, 은행 등의 여러 지점이 문을 닫은 가운데 전날부터는 한 대형 슈퍼마켓 체인에서도 여러 지점의 영업시간을 오후 3시까지로 단축한다고 발표했다. 또 화장품과 의약품을 파는 한 체인점도 여러 매장의 문을 닫았고, 맥도널드 같은 패스트푸드 체인점의 일부 매장에서는 앱이나 전화를 통한 주문만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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