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러, 인도의 최대 국방협력국…미·EU 압박에 선택시간 다가와"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을 중심으로 서방 세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나선 가운데 계속되는 인도의 침묵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1일(현지시간) 인도가 지난 며칠간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 및 서방과 관계 균형을 맞추며 외교 줄타기를 해야 했다며 그 배경에는 오랜 비동맹 외교 전통과 미국·러시아·우크라이나 3국과 모두 우호 관계를 유지해온 외교 현실이 있다고 보도했다.
인도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처음 밝힌 입장에서 특정 국가를 거명하지 않은 채 외교와 대화에 기회를 주자는 국제사회 요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러시아를 비난하지도 않았고 이어 진행된 러시아 비난 결의안 표결에도 기권했다.
하지만 인도가 '유엔 현장과 국제법, 각국 주권과 영토 완결성에 대한 존중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은 러시아에 국제법을 존중하라고 간접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BBC는 전했다.
인도의 기권 후 서방 국가에서는 인도가 최대 민주국가로서 더 명확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인도 외교관 출신인 JN 미스라는 "인도엔 선택지가 나쁜 것과 더 나쁜 것밖에 없다"며 인도의 외교 딜레마를 설명했다.
그는 "동시에 양쪽에 기댈 수는 없다. 어느 나라도 거명하지 않은 건 러시아에 맞서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한쪽 편을 들을 때 신중해야 하고 지금 바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가 외교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는 배경으로는 오래 유지해온 러시아와의 국방·외교 협력, 우크라이나 내 2만여 명의 인도 국민 안전, 미국과 EU의 러시아 제재 압박 등이 꼽힌다.
인도가 무기 수입 다변화와 국산화를 추진하면서 수입 무기 중 러시아산 비중이 70%에서 49%로 줄었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국방 협력국이다. 특히 인도는 현재 중국·파키스탄에 대한 전략적 억제력 유지에 중요한 러시아 S-400 미사일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또 인도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카슈미르 분쟁과 관련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표결에서 수십 년간 인도의 손을 들어준 것도 외교적으로 무시할 수 없다.
인도가 한쪽 편에 서지 않은 채 외교와 대화를 강조하는 것은 전통적인 비동맹 외교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싱크탱크 윌슨센터의 마이클 쿠겔만은 인도 입장은 과거의 전략과 일치하는 것으로 놀랍지 않다며 "인도 정부 입장에서도 우크라이나 사태가 불편하지만 (국방과 지정학적 필요성 때문에) 입장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 유학생 등 인도 국민이 2만여 명이나 되는 점도 인도의 선택을 어렵게 만든다.
모스크바와 리비아 주재 대사를 역임한 아닐 트리구니야트는 2만 명을 대피시키는 것은 몹시 어려운 임무라며 "자국 시민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리면서 한쪽 편을 선택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 제재 수위를 높이면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더 장기화할 경우 인도의 줄타기 외교도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한 인도의 입장에 대한 질문에 "인도와 협의할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전문가들은 인도의 S-300 미사일 시스템 도입이 미국의 '적대세력에 대한 통합제재법'(CAATSA)에 위배된다는 점을 들어 이 문제가 인도와 미국 간 협상카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러시아도 파키스탄과의 협력 강화라는 카드로 인도를 압박할 수 있다. 러시아는 20여 년간 인도가 미국에 더 가까이 가는 것을 용인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를 인도가 넘지 말아야 할 선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윌슨센터의 쿠겔만은 "우크라이나 갈등이 장기화하고 양극화 세계로 귀결된다면 인도가 선택해야 하는 분수령이 올 것"이라며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인도의 외교정책은 혹독한 시험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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