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중단·강제검사에 짐 싸…"코로나 걸려도 한국서 걸리겠다"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강제 검사한다고 하니까 이미 많은 사람이 한국으로 피신 갔어요. 검사받기 싫다는 거죠. 어차피 온라인 수업을 하니까 애들 데리고 검사 끝날 때까지 한국에 있다가 오겠다고 하더라구요. 강제 검사가 늦어지면 아마 더 늦게 돌아올 것 같아요."
홍콩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는 교민 류모 씨는 4일 홍콩 내 한국 동포 사회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코로나19 강제 검사를 앞두고 외국인들의 '홍콩 엑소더스'가 이어지는 가운데, 홍콩 거주 한국 교민들 사이에서도 귀국자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 국토교통부 항공정보사이트 에어포털에 따르면 이달 2일과 4일 홍콩발 인천행 대한항공의 좌석 점유율은 각각 75.1%, 60.2%이다.
또 3일 홍콩발 인천행 아시아나항공의 좌석 점유율은 43.3%다.
이는 1월에 비해 현저히 증가한 것이다.
1월 한 달간 홍콩발 인천행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전체 좌석 점유율은 각각 27%, 29%로 30%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홍콩의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한 2월부터 한국행 비행기의 탑승률은 올라갔다.
2월 한 달간 홍콩발 인천행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전체 좌석 점유율은 각각 49%와 36%였다.
특히 홍콩 정부가 등교수업 중단과 강제 검사를 발표한 직후 급증했다.
홍콩 대학들이 온라인 수업 계획을 발표한 직후인 2월 13일과 16일 인천행 대한항공의 좌석 점유율은 각각 71%, 68.8%로 치솟았다.
2월 17일과 19일 인천행 아시아나항공의 좌석 점유율은 44.3%, 48.7%였다.
또 홍콩 정부가 강제 검사 계획을 발표한 직후인 2월 23일과 27일 인천행 대한항공의 좌석 점유율은 각각 50.6%와 68.8%였다.
홍콩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각각 주 3회, 2회씩 운행하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인천행 승객의 상당수가 캐나다와 미국으로 향하는 환승객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교민의 귀국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어 "강제 검사 계획이 발표된 2월 22일부터 나흘간 닷새간 모든 홍콩발 항공권 구매가 2월 전체 항공권 구매의 약 4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주홍콩 한인회 관계자도 "등교수업이 중단되자 먼저 많은 대학 유학생들이 바로 한국으로 돌아갔다. 어떤 학생들은 개강에 맞춰 홍콩에 들어와 2주 격리를 마치자마자 온라인 수업이라는 소식에 곧바로 다시 돌아갔다"고 전했다.
그는 "많은 이들이 강제 검사를 받기 싫다고 말했고, 무엇보다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정부 격리 시설에 수용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했다. 코로나19에 걸리더라도 한국에서 걸리겠다면서 가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국인도 탈출 러시다. 우리 아들이 최근 두바이 출장을 다녀왔는데 비행기가 만석이고 요금도 엄청 뛰었다고 하더라"며 "미국, 영국 등 여객기의 운항이 금지돼 두바이 등을 통해 유럽으로 가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고 덧붙였다.
한국 기업의 한 홍콩 주재원은 "대부분의 사람이 코로나에 걸리는 것보다 격리 시설에 수용되는 게 두렵다고 말한다"며 "어떤 시설은 3인 1실이라는데 그런 데서 누가 지내고 싶겠냐. 격리 시설에 가기 싫은 것은 홍콩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홍콩에 29년째 거주 중인 교민 김모 씨는 "내 주변에서만 지난주에 10여명이 애들 데리고 한국으로 들어갔다. 굉장히 많이 귀국하고 있다"며 "대부분 4월 말에나 돌아오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홍콩은 이달 중 전 시민 대상 강제 검사(3회)를 시작할 계획이며, 확진자는 원칙적으로 격리 시설에 수용된다. 강제 검사 기간 도시 봉쇄도 함께 이뤄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외국인들의 홍콩 탈출이 이어지고 있다.
홍콩에 10년 넘게 살며 이주 컨설팅업체를 운영하는 교민 이모 씨는 "지금 장난 아니다. 도시 봉쇄설이 나오면서 난리가 났다"며 "원래 올해 귀국 계획이 있던 사람들도 봉쇄 전에 들어가겠다며 귀국 날짜를 다 앞당기는 바람에 갑자기 업무가 폭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홍콩 한국총영사관에 따르면 1월 31일 현재 홍콩에 있는 한국 교민의 수는 6천873명이다. 모두 홍콩 거주 비자를 보유한 이들이다. 홍콩은 현재 무비자 입국 금지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까지 홍콩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의 수는 1만8천명 규모를 유지해왔다.
한국총영사관 관계자는 "홍콩 정부가 격리 시설에 외부 물품 반입을 금지하면서 교민들이 격리 시설에 가더라도 위문품 등을 지원하는 게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 "교민들에게 미리 검사에 대비해 필요한 물품을 준비해 놓으라고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3일 홍콩 이민국(입경사무처) 자료를 인용, 2월 한 달간 9만4천305명이 출경하고 2만2천681명이 입경해 순 출경자가 코로나19 5차 확산 이후 최대인 7만1천354명이라고 보도했다.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순 출경자 수는 각각 1만6천879명과 1만5천252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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