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키이우에 남은 29세 테티아나씨 "우크라는 잃을 게 없어"
"생필품 사재기 사라지고 비교적 평온…경제도 버티는중"
(프셰미실[폴란드]=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에 남은 코후트 테티아나(29)씨는 지난 5일(현지시간) 혼자서 29번째 생일을 자축했다고 한다.
거주 아파트 인근 마트에서 케익을 직접 사와 초를 꽂았다.
이전같으면 가족·친구들과 함께 떠들썩한 파티라도 열었을텐데 이번에는 그럴 형편이 안된다. 엄혹한 전쟁 와중이기 때문이다.
테티아나 씨는 "이번처럼 무섭고 외로운 생일은 처음"이라며 '울상 아이콘'을 찍어보냈다.
폴란드 국경도시 프셰미실에서 만난 한 우크라이나 피난민의 소개로 알게 된 테티아나씨에게 6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현지 상황을 묻자 "아직은 생각보다 괜찮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가 사는 키이우시 드네프르강 동쪽 지역의 사정은 아직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했다.
때때로 귀청을 찢는듯한 비행기의 굉음이 들리고 자주 공습경보가 울리는 것 외에는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통행금지가 시작되는 오후 5시 이전에도 식료품을 사러가는 것 외에는 되도록 외출하지 않는다.
무척이나 답답한 생활이지만 아직 살아있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언론에서는 매일 민간인이 희생됐다는 소식이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순간순간 엄습하는 불안과 공포를 떨쳐낼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뉴스에서 주택 건물이 러시아군의 폭격에 내려앉은 처참한 장면을 볼 때면 '혹시 나도 저런 일을 당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고 토로했다.
전황이 악화하며 피란을 준비하는 사람도 최근 부쩍 늘었다고 테티아나씨는 전했다. 창문 밖을 내다보면 가재도구를 거리에 쌓아놓고 차에 싣는 이들을 자주 보게 된다.
테티아나씨가 식료품을 사러나갈 때 보는 거리 풍경은 익숙했던 만큼 '비현실적'이다. 거리는 바리케이트로 군데군데 통제됐고 몇 안되는 행인의 표정에는 불안감이 짙게 배어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전쟁이라는 극단적으로 비정상인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행여나 타인에게 약탈, 폭력을 당할까봐 극도로 접촉을 삼간다고 한다.
다만, 걱정했던 경제 활동은 전쟁 물자 조달 중심으로 아직은 간신히 지탱되는듯하다고 테티아나씨는 말했다.
전쟁 초기 빈발한 생활필수품 사재기 현상은 어느 정도 사라졌고 현재는 필요한 물품을 마트에서 아직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누구나 예상했듯 커피나 빵, 버터 등과 같은 식료품은 전쟁이 터진 뒤 평균 20%가량 뛰었다.
생필품 가격이 들썩이며 시민들이 동요하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 3일 선제 조처로 일부 기초 생필품의 가격 인상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정보통신(IT)업계에서 일하는 테티아나씨는 불행 중 다행으로 아직 직장을 잃지 않고 재택근무 방식으로 일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잘 견뎌왔지만 앞으로가 걱정이예요"
그도 뒤늦게 피란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군이 아직 잘 버텨주고 있지만 러시아군의 공세가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어 키이우 인근에 사는 연로한 부모님 걱정을 떨칠 수 없다고 했다.
평범한 우크라이나의 20대인 그는 이 전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대답은 단호했다. "옛 소련연방을 재건하려는 푸틴의 욕심이 부른 참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는 이 전쟁에서 더는 잃을 게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기면 끝내 러시아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호기를 잡게 될 것이고, 진다해도 자유와 민주적 가치를 수호하려 한 용맹한 국가로 전 세계에 각인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자신의 생존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된 '필사적이고 절박한' 국민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전 세계가 목도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푸틴이 침공 계획을 세우면서 우크라이나인의 이러한 절박함은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것이 현재 러시아군이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하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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