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고유가에 러 원유 제재 리스크까지…산업계 충격파 확산

입력 2022-03-08 12:21  

[우크라 침공] 고유가에 러 원유 제재 리스크까지…산업계 충격파 확산
美, '마지막 카드' 러 에너지 수출 차단 거론…유가 추가급등 우려
화학-항공 등 직격탄…단기수익 증가 기대하던 정유도 본격 먹구름

(서울=연합뉴스) 김영신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여파로 국제유가가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미국 등 서방의 러시아산 에너지 직접 제재 시나리오까지 거론되면서 국내 기업들이 받는 충격파도 커지고 있다.
고유가에 따른 산업계 전반의 큰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 국제유가가 이미 배럴당 120달러를 넘은 데다 세계 각국이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제재 가능성에 대비해 일제히 대체 수급처를 찾아 나서면서 수급난은 한층 가중되는 모습이다.



◇ "러시아 원유 수출 차단시 국제유가 배럴당 200달러" 예상도
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조치를 취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며 글로벌 에너지 대란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고 있다.
외신 보도를 보면 미 하원은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금지하고 러시아와 일반 무역 관계를 중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앞서 유럽을 방문 중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러시아산 원유 수출 금지를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에너지 제재는 국제 원유시장의 불안정성을 확대시키는 데 더해 러시아산 원유·가스 등을 수입하는 유럽 등 서방에도 직접적인 피해를 주기 때문에 그간 도입 논의를 미뤄온 '마지막 카드'다.
그러나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를 직접 겨냥하는 움직임을 본격화하면서 국제유가는 더욱 치솟는 분위기다.
국제유가는 전날 배럴당 130달러까지 돌파했다가 독일의 에너지 제재 반대 소식에 다소 진정됐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3.2%(3.72달러) 오른 119.4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또 런던 ICE선물거래소의 5월물 브렌트유는 배럴당 4.8%(5.61달러) 오른 123.72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국내 수입 원유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의 가격은 전날 기준 배럴당 125.2달러로 하루새 16.35달러나 급등했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 중 하나로 글로벌 시장에 하루 약 700만 배럴을 공급하고 있어 수출 차단시 공급 감소에 따른 충격으로 국제유가는 지금보다 더 급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러시아산 원유 수출 차단 시의 국제유가를 배럴당 200달러, JP모건은 185달러로 각각 예상했다.
러시아 측은 국제사회가 러시아 원유 수출을 금지하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300달러 이상으로 오를 것이라는 협박성 주장도 내놓고 있다.



◇ 고유가에 전 산업계 '비상 모드'…물류·연료 비용 증가에 수급 불안
한국은 원유 등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아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피해가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이미 국내 산업계의 피해는 속속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러시아로부터 가장 많이 수입하는 품목은 나프타(25.3%)이고, 두 번째가 원유(24.6%)다.
러시아의 나프타·원유 공급 차질 우려로 국내 기업들은 당장 대체 수급처를 찾아 나서는 등 비상대책을 가동하고 있다.
업황이 원유 수급과 직결돼 있는 정유업계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국제유가 상승으로 재고 이익이 기대되지만, 고유가 장기화 시 수요 감소에 따른 피해가 예상된다.
국내 정유업계의 러시아산 원유 비중은 5% 남짓으로 미미하고 수개월 단위로 원유를 도입하기 때문에 러시아산 원유 제재가 현실화되더라도 당장 수급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하지만 국내 정유사뿐만 아니라 글로벌 정유사들이 일제히 러시아산 대체 수급처를 찾아 나서고 있기 때문에 대체 물량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량 부족 속에 국제유가는 계속 더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주요 대체 수급처 중 하나로 거론되던 이란산 원유는 서방과 이란의 핵 합의 협상 지연으로 수출 재개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유가 프리미엄이 더욱 높아지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비싼 가격에 원유를 사 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이미 유가가 너무 높은 데다 추가 상승시 수요 위축, 정제마진 하락으로 이어져 수익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달 첫째 주 정제마진은 배럴당 5.7달러로 2월 마지막 주(6.9달러)보다 1달러 이상 하락했다. 정제마진은 최종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비 등을 뺀 금액으로, 정유사의 수익을 결정짓는 핵심 지표다.



화학·항공 등 다른 업계도 국제유가 고공행진에 따른 원자재, 연료비, 물류비 상승으로 피해가 현실화하고 있다.
당장 화학업계의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이 급등하면서 원가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이달 첫째 주 나프타 가격은 톤(t)당 1천112달러로, 주간 기준으로 22.1% 상승했다.
만약 러시아산 나프타 수입이 제한되면 다른 나라의 나프타로 수요가 몰리면서 가격 추가 상승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현대차증권[001500] 강동진 연구원은 "나프타 분해 설비(NCC) 업체들은 공급 과잉에 더해 원재료 부담까지 커지며 수익성이 당분간 크게 악화될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국내 NCC 가동률 저하가 불가피하며, 다운스트림 업체들까지 포함해 업계 전반의 수익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의 경우 지난해 연료비가 1조8천억원으로 전년보다 44.3% 증가했는데 유가가 배럴당 1달러 변동하면 약 3천만달러의 손익 차이가 발생한다.
예컨대 국제유가가 180달러까지 오르면 대한항공의 연간 연료비는 3조원 이상으로 늘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러시아가 한국 항공사의 영공 통과를 금지하면 국내 항공사들은 유럽행 항공편 항로도 조정해야 하는데 이 경우 연료비가 기존 항로 대비 20% 가량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해운업계도 비용 상승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국내 최대 컨테이너선사인 HMM의 연료 사용액은 2020년 기준 5천억원이었지만 국제유가의 지속적 상승으로 인해 지난해 3분기 기준 비용은 6천800억원까지 치솟았다.
전자·반도체, 배터리 업계 역시 국제유가 상승으로 물류비 부담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이들 업계는 최근 글로벌 선사들이 러시아 노선을 속속 중단하고 있어 물류난까지 더욱 심화돼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희귀가스나 광물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국내 관련 기업들은 이들 원자재의 공급선 다변화에도 주력하고 있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대표적인 배터리 원자재 광물인 니켈의 톤(t)당 가격은 전날 기준 4만2천995달러로 직전일보다 44.3%나 폭등했다.
이는 지난주의 평균과 비교하면 57.7%,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132.5% 오른 수치다.
키움증권은 "러시아·우크라이나발(發)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되면 유가가 다소 진정되겠으나 고유가 흐름은 이어질 것"이라며 "더욱이 높은 에너지 가격이 다른 원자재의 가격 상승으로 확대되는 '슈퍼사이클' 진입 가능성도 높다"고 전망했다.
shin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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