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당선인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계승…현안 포괄적 해결"
'한국이 해결책 내놔라'는 일본 정부 입장 바뀔지 주목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박성진 이세원 특파원 =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노동자와 일본군 위안부 등 역사 문제로 꼬인 한일 관계가 풀릴지 주목된다.
윤 당선인은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으로 평가되는 한일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지속해서 피력해왔다.
그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의 기본 정신과 취지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겠다고 공약했다.
아울러 한일 정상 간 '셔틀 외교'를 복원하고 고위급 협의 채널을 가동해 한국 법원의 강제동원 노동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상 판결,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문제 등 얽히고설킨 한일 갈등 현안의 포괄적 해결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토대로 한일 관계의 미래상이 담긴 '김대중-오부치 선언 2.0 시대 청사진'을 제시하겠다는 것이 윤 당선인의 구상이다.
◇ 日전문가 "윤석열, 한일 관계 개선 의욕 있어 보여"
일본의 한일 관계 전문가들도 윤 당선인이 한일 관계 개선 의지가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대학원 교수는 10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윤 당선인은) 한일 관계를 (1998년)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과 같은 수준으로 회복하겠다고 했다"며 "어떤 의미에선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 측면도 있으나, 상대적으로 한일 관계에 의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기미야 교수는 "윤 당선인은 또 북한에 압력을 가하고, 중국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서 한미일 안보 협력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며 "한미일 안보협력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도 상대적으로 높아질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한일 국민감정의 골도 깊어져 정치적으로 민감한 역사 문제와 관련해 양측이 양보를 통해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노동자 배상 문제는 최대 난제로 꼽힌다.
한국 법원의 일본 기업에 대한 배상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히 해결된 문제라며 한국 정부가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구체적 해법 제시는 아직 없어…포괄적 해결 원칙론만
윤 당선인 측은 일제 강제동원 노동자 배상 판결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한 적은 없다. 다만, 다른 외교·안보·경제 분야 현안과 함께 포괄적으로 해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만 제시했다.
나아가 일본 정부는 지난달 1일 한국 정부의 반발에도 일제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사도(佐渡)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식 추천해 역사 갈등의 새로운 불씨를 제공했다.
윤 당선인 측도 문재인 정부와 마찬가지로 사도 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에는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선 캠프의 외교안보정책본부장인 김성한 외교부 제2차관은 지난달 24일 자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우파 세력이 힘을 키우면서 역사를 미화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면서 "강제징용 현장이었던 사도 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하는 움직임도 우려된다. 서로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당선인의 공약집을 보면 "과거사·주권 문제는 당당한 입장을 견지"한다는 내용이 있다.
◇ "일본이 종래 입장 유지하면 한일 문제 타개 곤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일본 정부가 역사 갈등 현안과 관련해 '일본 측이 수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한국 측이 제시해야 한다'는 태도를 고수하면, 관계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일본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기미야 교수는 "그동안 일본 정부는 '징용이나 위안부 문제는 한국이 제대로 대응해야 한다. 일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식의 태도였다"고 평가한 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해도 일본 정부가 종래와 같은 입장이라면 한일 간 문제를 타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하지만 일본에선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작년 10월 출범했고 한국에서도 정부가 바뀌니 일본 정부의 대응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며 "완전한 타개는 어렵더라도 분위기가 달라져서 타개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일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일본 정부의 윤 당선인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한일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기무라 간 고베대 교수는 "윤 당선인은 보수 정치인이고 (외교) 브레인에 (한일 관계를 중시하는) 김성한과 박철희(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등이 있어 일본 측에선 한국이 양보하고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며 "일본 측의 이런 과도한 기대는 매우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무라 교수는 "2012년 박근혜 대통령 당선 때의 상황과 조금 비슷하다"면서 "당시 일본 정부는(박근혜 정부에) 일본 쪽 사정에 밝은 브레인이 있으니 한일 관계가 좋아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그런 실망감이 한국에 대한 매우 큰 반감으로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그는 "사도 광산, 징용, 위안부 등은 (한국 내 반대) 여론도 있으므로 한국이 일방적으로 양보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일본 측은 한국의 움직임을 보고 어떻게 대응할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 역사 갈등 외 독도·후쿠시마 오염수 등 곳곳에 암초
향후 한일 관계에는 역사 문제 외에도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로 대표되는 일본의 군사 대국화 문제 등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
올해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기시다 총리가 자민당 내 강경 보수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한국 측에 과감하게 양보하는 결단을 내릴 가능성도 크지 않다.
기시다 총리가 자민당의 간판으로 나서 작년 10월 중의원 선거를 승리를 이끌었다고 하지만, 아직 기시다 정권의 기반이 반석 위에 올라섰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기시다 총리는 한국의 반발 등을 고려해 사도 광산의 세계유산 추천을 보류하려고 했다가 아베 신조 전 총리 등 당내 강경파의 반발에 막혀 막판에 추천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가에선 자민당 내 비둘기(온건)파인 기시다 총리가 올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도 승리하면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있다.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 현립대 교수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양국 모두 국내에서 반발이 있겠지만 이를 설득하고 중장기적으로 윈윈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양국 지도자가 한국의 새 대통령 당선이라는 기회를 살려 국내 반발을 설득할 결심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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