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위된 마리우폴 산과병동 피격…임산부 등 17명 다쳐
젤렌스키 "잔악 이상 행위"…유엔총장 "끔찍한 공격"
수도·전기·생필품 단절…당국 "가족 숨지면 덮어두라" 지침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해산일이 임박한 듯 배가 부푼 임산부가 초점 없는 눈으로 들것에 실려가는 모습, 피 묻은 병상 등의 사진이 9일(현지시간) 보도되면서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이 처한 비극에 새삼 이목이 쏠리고 있다.
조산원까지 폭격해 박살을 내놓는 러시아의 무차별적인 공격에 국제사회의 비판이 폭주하고 있다고 미 CNN 방송 등이 보도했다.
러시아 군은 이날 마리우폴에 또 다시 거센 공격을 퍼부었고, 이 와중에 시내의 조산원까지 포격하면서 출산을 앞둔 임산부와 병원 직원 등 17명이 다쳤다.
민간인에게 피란 통로를 열어주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이 현지 시간으로 이날 오전 9시부터 12시간 동안 마리우폴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휴전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격이 강행된 것이다.
파괴된 산부인과 병원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공개한 마리우폴 시의회는 러시아군이 공중에서 여러 발의 폭탄을 투척했다면서 최근까지 아이들이 치료를 받았던 병동 건물이 완전히 파괴되는 등 피해가 막대하다고 전했다.
AP통신은 포격 현장에서 구급대원들이 만삭의 임부와 피를 흘리는 여성을 들것에 싣고 피신시키는 장면, 또 다른 여성이 자신의 아이를 끌어안고 울부짖는 모습 등이 목격됐다고 전했다.
러시아 외교부는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이 병원 내부에 우크라이나 군이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포격 직후 공개된 사진이나 영상에는 병원 내에 만삭의 임산부와 의료진이 있었음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고 CNN은 지적했다.
실제로 포격에 부서진 병동의 피 묻은 침대 사이로 의료진이 집기를 옮기는 모습, 다친 듯한 임산부가 만삭의 배를 내놓은 채 들것에 실려 대피하는 모습 등의 사진은 포격 당시의 급박했던 정황을 짐작하게 했다.
현지 경찰 책임자 볼로디미르 니쿨린은 "러시아는 오늘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다. 이건 변명의 여지 없는 전쟁 범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군이 산부인과 병원을 직격했다. 어린이들과 주민들이 잔해 아래 갇혀있다"며 "잔악 이상의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국제사회도 비판에 나섰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끔찍한 공격'이라고 규정하면서 "민간인들이 그들과 무관한 전쟁에서 가장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 말도 안되는 폭력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연약하고 방어력이 없는 사람들을 겨냥하는 것보다 더 불량스러운 것은 없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 끔찍한 범죄에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주의 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MSF)는 "마리우폴에서 포격과 폭격이 계속 이어지면서, 특히 활동에 제약을 받는 임산부와 노인들이 의료서비스를 받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아조프해와 맞닿은 인구 43만명의 마리우폴은 친러분리주의자들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부와 러시아가 2014년 병합한 크림반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로, 러시아의 포위 공격이 9일째 이어지면서 현재까지 이곳에서만 1천200명이 사망했다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밝혔다.
폭격이 이어지는 탓에 주민들이 탈출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전기와 수도, 가스가 수일 째 끊긴데다 식료품과 의약품까지 동나 이곳 주민들 다수가 생사 기로에 몰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군의 포위 전 가까스로 도시를 빠져나온 마리우폴 주민 마리나 레빈추크는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가족 중 누군가가 죽으면 손발을 묶은 채 밖에 시신을 덮어두라는 지침을 시 당국이 내리고 있다"며 현지의 비극적인 상황을 전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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